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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리포트]당 대표 대신 국민에 충성하는 상향식 공천제로 바꿔야

책임정치를 위한 선거제도 개혁 방향은

김재훈 KDI 선임연구위원

정치인생존여부 당 공천에 달려

하향식 공천선 부패 조작 개입 쉽고

국민이익 외면에 정치 무관심 초래

상향식 공천선 지역민 당원이 선출권

국민위한 정책 법안 많이 나오지만

의원 포함 기득권자들 제도 변화 거부

국민 직접 나서지 않으면 개혁 힘들어

대통령제 책임정치 공정평가 위해선

소선거구 유지하되 공천 제한 없애야





김재훈 KDI 선임연구위원


국회 의석을 169석 장악한 거대 야당이 범죄에 연루될 가능성이 있는 당 대표의 구속을 막기 위해 구속 여부에 대한 법원의 판단도 받지 않겠다며 체포동의안을 부결시켰다. 거야는 경제·사회·안보·외교의 복합 위기로 고통받고 있는 국민과 기업이 경제 회생을 위한 정책 입법을 고대하고 있음에도 대통령실이나 여당의 입법 협조 요청은 외면한 채 특검 등으로 대통령 공격에만 집중하고 있다. 국회의원이 자신을 뽑아준 국민의 이익에 위배되는 행동을 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국민이 다음 선거에서 자신이 선출한 대표의 활동에 대한 책임을 물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한국에서는 이런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다.

한국의 국회의원 선거는 정당의 공천, 즉 공직 후보자 추천으로부터 시작한다. 미국(주 헌법에서 공천을 경선 방식으로 규정하고 있음), 영국 등 많은 선진국과 달리 한국의 경우 정당 공천이 당 대표의 영향력 아래에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정치인은 공천을 받지 못하면 생존하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공천 과정에 부패나 조작이 개입되기 쉽다. 지방선거에서는 언론과 국민의 감시가 소홀해 부패 가능성이 더 크다. 정치인은 선거에 당선되는 순간부터 다음 선거에서 공천권을 행사할 당 대표에게 충성을 다할 수밖에 없다. 국민에게는 아주 짧은 기간, 즉 공천장 수여일과 선거일 사이에만 충성한다. 따라서 한국 정당의 하향식 공천제는 당 대표에게만 복무하고 국민의 이익에 복무하지 않는다. 상대적으로 국민의 이익에 더 잘 복무할 후보를 국민이 알아서 선출하면 되지 않느냐는 질문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정당이 하향식 공천을 하는 상황에서 현직자뿐 아니라 도전자도 일단 선출되면 국민의 이익은 도외시할 것이기 때문에 결국 국민은 이념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되든 달라질 것이 없다고 판단하는 국민이 많아지고 이는 정치에 대한 무관심과 낮은 투표율로 연결된다. 자격시험을 통해 후보를 제한해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은 실질적으로 자신을 지지하는 집단에게 가산점을 부여하겠다는 하향식 공천의 논리일 뿐, 국민의 선택권을 무시하는 가부장적 개입이다.

하향식 공천제는 국민의 이익에 반하는데도 유지되는 이유가 뭘까. 제도를 바꿀 권한을 가진 주체들이 제도 변화, 특히 상향식 공천제로의 변화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공천권을 행사하는 당 대표 외에 현직 의원들도 지역구의 더 나은 잠재적 경쟁자들을 배제할 수 있고 평소 지역구에 대한 노력이나 비용이 적게 드니 다른 제도로의 변화를 원하지 않는다. 일단 정당 공천을 받아 국회에 진출한 현직자는 하향식 공천제에서 당 대표의 눈 밖에 나지 않는 한 손쉽게 공천을 확보할 수 있고 지역의 정치 성향이 크게 바뀌지 않는 한 쉽게 의원직을 유지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심지어 자신의 지역구를 다른 이에게 양보하거나, 빌려줬다가 다시 찾아오거나, 대물림하는 경우도 가능하다. 불체포특권, 정당 보조금 등과 더불어 그들만의 리그에서 그들만의 특권을 누리고 있다. 국회의 모든 정치 개혁 논의는 스스로의 특권을 내려놓는 것이기에 립서비스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지대를 추구하는 정당과 국회에 대해 국민이 직접 나서지 않는다면 정치 개혁은 이뤄지지 않는다.

상향식 공천은 지역구민이나 지역당원이 공직 입후보자 중에서 후보를 선출하는 것을 말한다. 상향식 공천제에서는 지역구민이나 지역당원의 선거를 통해 공천이 이뤄지기 때문에 선출된 의원들은 지역구민이 원하는 바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다. 지역구민이 원하는 정책이나 법안을 발의하고 통과를 위해 소속 정당의 다른 의원들, 더 나아가 경쟁 관계에 있는 상대 정당 의원들과도 자발적으로 소통하고 설득하며 협력하고 연대하는 노력을 마다하지 않는다. 국민과 가깝고 국민을 위한 정책과 법안이 많이 제안되고 통과될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부분적으로 상향식 공천이 도입된 17대 국회에 대한 실증 분석을 통해 확인됐다. 현재는 국민의 뜻과는 거리가 먼 유사한 법안들이 수없이 제안되지만 상임위원회에조차 부의되지 않고 계류돼 있다가 자동 폐기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국회가 야유·비난·막말로 얼룩진 정쟁이 아니라 국민의 이익을 위한 공론과 소통의 장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한 지역구에서 최다 득표자가 선출되는 소선거구제와 정당 투표를 통한 비례대표제를 택하고 있다. 소선거구제는 지나치게 많은 사표를 발생시키고 양당제를 유발한다는 등의 비판을 받고 있다. 사표에 대한 비판은 정당한 비판이라고 보기 어렵다. 과반이 안 되는 득표로 당선된 경우 당선자가 합리적이라면 자신의 지지자들뿐 아니라 지지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서도 일한다. 그래야 다음 선거에서 어떤 경쟁자를 만나더라도 승리할 가능성을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선자를 지지하지 않았던 표가 무시되거나 사장되지 않고 당선자의 활동에 대한 감시와 목표가 되며 책임정치의 밑거름이 된다. 이러한 효과는 상향식 공천제에서 정당의 후보가 되기 위한 경쟁을 통해 더욱 빛을 발할 것이다.

소선거구제는 양당제를, 비례대표제나 중대선거구제는 다당제를 유발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는 그 자체로서 가치 판단의 대상은 아니며 주어진 상황에 적합한 제도인지가 중요하다. 비례대표제나 중대선거구제가 사표의 발생을 최소화하고 표의 등가성은 최대화하지만 책임정치에는 적합하지 않다. 실증적으로 소선거구제의 부패가 가장 덜하고 다음이 비례대표제이며 소선거구제와 비례대표제 혼합형이 가장 심한 것으로 나타난다. 이론적으로 중대선거구제는 소선거구와 비례대표의 중간 정도일 것이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는 채택된 사례가 없다. 소선거구제 외의 제도들은 3개 이상의 정당이 출현하기 때문에 정당 간 연합을 통한 정부 구성이 일상화되는 의원내각제에 보다 적합하다. 입법적 지지를 바탕으로 대통령의 성과에 대해 공정하게 평가하고 그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항상 절반 이상의 의석을 가진 정당이 출현하는 소선거구제가 제도적 정합성이 가장 높다.

우리와 같이 소선거구와 비례대표제가 혼합된 경우가 정치 부패가 제일 심하고 국회의 정부 감시 기능도 가장 떨어진다. 또한 모든 선거구제에서 하향식 공천이 상향식 공천에 비해 정치 부패가 심하다. 정부 규모 측면에서는 대통령제가 가장 작고 의원내각제가 가장 크다고 밝혀진 바 있다. 이는 대통령제의 정부 효율성이 의원내각제보다 뛰어나며 그만큼 예산 낭비가 작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통령제는 주로 소선거구제, 의원내각제는 비례대표제와 조합을 이룬다는 점을 고려하면 소선거구제·중대선거구제·비례대표제의 순으로 책임정치가 강할 것이라는 명제와도 잘 부합한다. 결론적으로 대통령제 유지를 전제로 국민을 위한 깨끗하고 유능한 책임정치를 구현하려면 비례대표는 폐지하고 소선거구는 유지하되 선출직의 첫 관문인 공천 참여에 제한을 없애야 한다. 이들이 공정한 경쟁을 통해 정당의 후보로 선택받을 수 있는 상향식 공천을 도입할 때 국민에 의한 국민의 정치 개혁이 이뤄진다.

김재훈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

서울대 심리학과와 행정대학원을 거쳐 로체스터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노스웨스턴대 켈로그경영대학원과 로체스터대 월리스인스티튜트에서 박사후과정을 밟았다. 게임이론·계약이론 등 경제학의 도구로 정치 현상, 제도를 이론적·실증적으로 분석하는 정치학자다. 의회 의사 결정, 공직임용제도와 정부 성과 및 공직 부패, 공천제도, 대학 구조 개혁, 기업 지배구조, 금융 감독 체계, 반부패 기구(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등에 대한 학술 및 정책 연구를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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