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들의 대규모 ‘히잡 반대 시위’를 촉발했던 이란에서 여학생을 겨냥한 독가스 테러가 석달 넘게 지속돼 800명이 넘는 피해자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여학교를 폐쇄하려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테러의 배후라는 의혹이 퍼지고 있다.
2일(현지시간) AP통신·BBC·파이낸셜타임스(FT) 등의 외신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말부터 이란의 수도 테헤란을 비롯한 15개 도시, 여학교 30여곳에서 독성 가스 공격이 이어졌다. 피해자들은 메스꺼움, 현기증, 마비 증상 등을 호소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여학생을 노린 독가스 테러는 지난해 11월 30일 수도 테헤란으로부터 남쪽으로 125㎞ 떨어진 콤에서 처음 파악됐다. 이곳은 이슬람 시아파의 성지인 만큼 보수 성향 성직자들이 몰려있고 주요 종교 학교들이 자리잡았다. 여기서만 최소 여학교 3곳에서 테러가 일어난 것으로 확인된다.
테러는 끊임 없이 이어져 BBC의 현지 조사에 따르면 지난달 26일 기준 830명이 넘는 학생들이 가스 중독에 시달리고 있다. 대부분이 여학생이다. 지난달 28일에도 수도 테헤란 인근 파리드스의 카얌 여학교에서 테러가 발생했다. 이 학교 37명의 학생이 구토, 호흡 곤란의 증상을 보여 병원으로 실려갔다. 독가스가 퍼지기 직전 썩은 생선 냄새, 상한 귤 냄새, 포백제 냄새 등을 맡았다는 증언이 이어졌다. 일부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연쇄 테러를 걱정하며 온라인 수업을 요구하고 있다.
테러의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외신들은 여성의 교육권 박탈을 노렸다는 의혹과 ‘히잡 반대 시위’에 대한 보복을 원인으로 보고 있다. AP통신은 “여성을 겨냥한 테러가 과거 이란에서 종종 있었지만 이번처럼 여성 교육권을 겨냥한 공격은 없았다”며 “1979년 이슬람 혁명으로 히잡 착용 의무화가 이뤄진 후에도 여성의 교육권을 자체를 부정하는 움직임은 없었다”고 지적했다.
또 지난해 9월 ‘히잡 의문사’로 촉발된 반정부 시위에 대한 보복성 테러라는 분석도 힘을 얻고 있다.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이 시위의 원인으로 여성들의 교육을 탓하며 맞불을 놨다는 것이다. 이란인권센터(CHRI) 관계자는 “사회 전반에 걸친 근본주의 사고가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이라고 말했다.
잇단 테러에도 정부는 난방기기 사용에 따른 현상이라며 사건을 대수롭지 않게 말한 바 있다. 비록 테러가 여러 도시로 퍼지자 사법 당국은 의도적인 공격 가능성을 인정해 수사에 착수했다. 유네스 파나히 이란 보건부 차관은 “일부 세력들이 전국의 여학교를 폐쇄하려는 준동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란 국민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고 있다. 그 이면엔 당국과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있다. 일부 학부모들은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에 반대하는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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