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산한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의 다음 타자로 지목되고 있는 스위스 2대 은행 크레디트스위스(CS)의 주가가 15일(현지 시간) 25% 이상 폭락하며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최대주주인 사우디국립은행이 “추가 금융 지원을 할 수 없다”고 밝힌 데 따른 여파다. 시장 안팎에서는 SVB 위기가 유럽 대형 은행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CS를 비롯해 소시에테제네랄 등도 주가가 급락하며 거래가 일시 중지된 가운데 유럽 증시는 장 초반 3% 내외의 하락세를 기록했다.
이날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CS 주가는 장중 25% 곤두박질하며 주당 1.6스위스프랑 내외에서 거래됐다. 암마르 알 쿠다이리 사우디국립은행 회장은 “규제 때문에 우리가 CS의 지분을 10% 이상 보유할 수 없게 돼 더 많은 금융 지원을 할 수 없다”고 말한 것이 주가 급락의 발단이 됐다. 사우디국립은행은 CS의 최대주주로 지난해 약 14억 스위스프랑을 들여 CS의 지분 9.9%를 인수했다.
CS는 파산 가능성이 높은 은행으로 전문가들에게 지목될 만큼 불안한 행보를 이어왔다. 앞서 지난해에는 파산한 영국 그린실캐피털과 한국계 투자자 빌 황의 아케고스캐피털에 대한 투자 실패로 막대한 손실을 봤다. 이후 회복을 위해 안간힘을 써왔지만 SVB를 비롯한 미국 중소 은행이 잇따라 무너지고 전 세계 은행권에 위기감이 고조되면서 다시 휘청이고 있다. 특히 CS는 전날 발표한 연례 보고서에서 “2021년과 2022 회계연도의 내부 통제에서 ‘중대한 약점’을 발견했다”고 밝혀 불안감에 기름을 부었다.
이미 시장은 CS발 위기 가능성에 반응하는 모습이다. CNBC에 따르면 CS를 비롯해 소시에테제네랄, 이탈리아의 몬테데이파스키와 유니크레디트의 주가가 급락하며 주식 거래가 일시 중단됐다.
CS의 자산 규모는 지난해 기준 5314억 프랑(약 760조 원)으로 파산한 SVB(약 275조 원)보다 3배가량 크다. 자산 규모만큼 전통의 금융기관이어서 CS와 연관된 금융사나 기업도 전 세계적으로 많아 문제가 커질 경우 파장도 그만큼 막대할 수 있다.
시장이 보는 CS의 부도 가능성도 높아지는 추세다. 1년 만기 신용부도스와프(CDS)는 장중 1200bp(1bp=0.01%포인트)까지 폭등했다. 수치가 높을수록 부도 위험이 크다는 뜻이다. 블룸버그는 “CDS가 1000bp를 넘는 것은 극히 드문 현상”이라며 “그리스 재정 위기 당시 그리스 은행들의 CDS가 1000bp까지 치솟은 바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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