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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 간 노포, 日긴자에 많은 이유는?[똑똑!스마슈머]

글로벌 명품 매장·백화점 들어선 번화가

골목 곳곳엔 100년 넘은 노포들 존재감

상권 위기 속 노포 중심 '백점회' 결성해

자체 홍보지 발행 마케팅·스토리 개발등

코로나땐 대기업도 연대 '같이 살아남자'

대형·골목 조화 이룬 '긴자다움'에 눈길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 16일 오후 일본 도쿄 긴자의 오므라이스 노포에서 친교의 시간을 함께하며 점포 건물을 그린 작품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도쿄=연합뉴스




지난 16일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한일 정상회담 2차 만찬이 진행된 도쿄 긴자(銀座)의 한 경양식집이 주목받은 가운데 대형 유통·명품 채널 틈 속에서도 절대 뒤지지 않는 존재감을 과시해 온 노포(老鋪)들의 저력이 눈길을 끌고 있다.

명품 거리 긴자의 ‘진짜 명품’ 노포


19일 긴자 공식 홈페이지에 따르면 한일 정상의 2차 만찬이 열린 식당은 1895년 창업해 128년째 운영 중인 ‘렌가테이(煉瓦亭)’로 포크커틀릿에 양배추를 곁들인 일본식 ‘돈가스’와 오므라이스 발상지로 알려진 곳이다. 먹고 마실 것 다양한 시대이기에 사실 맛을 두고는 평가가 엇갈리지만, ‘일본 최초의 양식점’이라는 상징성과 온갖 풍파에도 100년 넘게 업(業)을 지켜온 장인 정신에 많은 이들이 좁고 오래된 이곳을 찾아와 줄을 서가며 식사를 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 일대에 이처럼 ‘대단한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수십 년, 몇 대에 걸쳐 가게를 지켜 온 노포들이 곳곳에 포진해 있다는 점이다.

일본 도쿄 긴자에서 100년 넘게 영업중인 경양식 레스토랑 ‘렌가테이’의 외관(왼쪽부터 시계방향)과 대표 메뉴 오므라이스, 포크커틀릿/사진=송주희기자


골목 곳곳의 소박한 간판 위로 ‘Since 1885’, ‘1870’ 등 진한 내공의 숫자가 적힌 가게들이 눈에 들어온다. 100년 넘은 역사를 자랑하는 맥줏집부터 일본 최초의 단팥빵을 선보인 빵집, 3대째 드립 커피 외길을 걷고 있는 카페까지. 이들은 그 존재 자체로 긴자의 역사가 되어 일본인은 물론 외국인 관광객의 필수 방문지가 됐다.

“이 거리를 살리자” 상인들의 연대, 백점회의 탄생


긴자의 작은 점포들이 자본으로 무장한 유통 공룡들의 틈바구니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로는 ‘노포 연대’가 꼽힌다. 현재 긴자에는 노포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백점회’라는 단체가 있다. 1954년 생긴 이 단체는 당시 신주쿠와 시부야의 부상으로 ‘긴자 사양론’이 대두하자 거리의 활기를 되찾기 위해 상점 100곳이 의기투합해 결성한 모임으로 지금은 회원 수가 124곳이다. 긴자에서 5년 이상 영업장을 운영한 소매·서비스업 사업자가 가입할 수 있다. 백점회의 대표 활동 중 하나가 ‘긴자백점(銀座百点)’이라는 월간 책자 발행인데, 1955년 4월 인가를 받은 뒤 최근 2023년 3월까지 820호를 찍었다. 매월 7만 부가량 발행하는 이 월간지는 긴자와 관련된 주제로 유명 인사들의 좌담회와 에세이, 연재물 등을 싣고 곳곳에 상점 광고를 게재한다. 3월호에는 ‘패션과 긴자의 관계’를 주제로 긴자에 위치한 마츠야 백화점의 고문과 역시나 긴자에 매장을 운영 중인 시세이도의 패션 디렉터, 그리고 패션 저널리스트가 참여한 좌담회가 메인 콘텐츠로 담겼다.

긴자 상점들로 구성된 ‘백점회'에서 발행하는 월간지 ‘긴자백점’의 표지들. 1955년 창간호(왼쪽부터)와 800호인 2021년 7월호, 올 3월 나온 820호/사진 제공=긴자백점 홈페이지


수준 높은 정보를 전달하면서 그 안에 긴자 상점과 이야기들이 자연스럽게 녹아들게 해 백점회의 중요한 마케팅 수단 역할도 한다. 이 책자는 가맹 점포에서 무료로 받아볼 수 있지만, 권당 354엔, 연간 구독 4248엔에 판매하는 유료 잡지다. 알찬 내용과 감각적인 표지 때문에 매월 잡지를 기념품처럼 챙기는 사람도 있다. 백점회는 한때 신용카드사와 제휴해 회원점에서 이용하면 더 많은 포인트를 주는 전용 카드를 발행할 만큼 활발한 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상인들의 적극적인 활동은 고객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지난 2021년 7월 800호를 찍은 긴자백점의 11대 편집장인 타나베 유코씨는 당시 일본 언론들과의 인터뷰에서 “코로나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긴자 거리를 걷진 못해도 이 잡지는 읽고 싶다’며 정기 구독 신청을 하는 독자가 늘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코로나에 상점가·대기업 의기투합 ‘진화한 연대’




긴자 상점가는 지난 2020년 코로나 19로 영업이 타격을 받고 문 닫는 점포가 나오자 상권 회복을 위해 점포가 릴레이로 상점과 대표 상품을 홍보하는 ‘물건 연결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17번째 홍보 주자로 지목을 받은 스키야키 전문점 ‘긴자 요시자와’의 사장은 다음 주자로 공연 중단의 피해를 보고 있던 쇼치쿠 가부키좌(오른쪽) 지목했고, 바통을 받은 가부키좌 관계자들은 자사 홍보와 함께 요시자와에서 건네받은 홍보 상품을 함께 사진에 담아 게시했다./사진 제공=물건 연결 프로젝트(긴자 모노 츠나기) 인스타그램


코로나 19로 한창 관광객과 긴자 방문객이 줄었던 2020년에는 노포는 물론, 긴자에 매장을 낸 대기업들도 의기투합해 ‘물건 연결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한 단계 진화한 ‘상인 연대’의 힘을 과시했다. 당시 152년간 영업해 온 한 도시락 가게가 코로나에 버티지 못한 채 폐업을 결정한 게 계기가 됐다. 상인들은 ‘이대로라면 모두 무너질 것’이라며 공동 소셜네트워크 계정을 만들어 자사 상품을 홍보하는 게시물을 올리고, 다음 상점을 지목하는 바통으로 그 홍보 상품을 보내는 릴레이 캠페인을 전개한 것이다. 당시 17번째로 바통을 받아 재해 때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캔 함박 스테이크’를 소개한 곳이 이번 정상회담 1차 만찬 장소였던 스키야키 전문점 ‘요시자와(吉澤)’다. 상인들의 호응에 시작 4개월 만에 100개 점포(회사)가 참여했고, 이를 기념해 유니클로 긴자점은 참여 상점의 로고를 넣어 자기만의 셔츠와 에코 백을 만들 수 있는 이벤트를 열어 수익금을 상권 활성화에 썼다. 대형 백화점인 마쓰야 긴자점도 프로젝트 전시회를 열어 100개 점포가 그동안 교환한 물건과 협업의 내용을 공유했다.

유니클로 긴자 플래그십 매장에 자리한 긴자 스페셜 컬래버 코너에서는 긴자 노포들을 소개하는 부스가 상점 별로 설치돼 있고, 해당 상점들의 대표 이미지와 로고를 입힌 셔츠와 에코백 등 기념품도 판매한다. 이들 상품은 유니클로의 긴자 매장들에서만 살 수 있다./사진=송주희기자


함께 사는 상권 만든 ‘긴자다움’


이 같은 ‘함께 살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2020년 백점회에 가입한 유니클로는 2021년 긴자에 12층짜리 건물을 리뉴얼해 ‘글로벌 플래그십 매장’을 선보이면서 긴자 노포 15곳(백점회 소속이 아닌 곳도 포함)의 로고를 입힌 셔츠와 에코 백, 각종 기념품을 판매하는 ‘긴자 스페셜 컬래버’ 코너를 만들었다. 윤 대통령이 과거 일본 여행 때 방문했던 장소이자, 그때의 인연이 계기가 돼 이번 정상회담 2차 만찬 장소로 선정된 렌가테이 역시 이 코너에서 굿즈로 만나볼 수 있다. 노란 계란 위에 먹음직스러운 붉은 토마토 소스가 내려앉은 오므라이스 로고가 인쇄된 셔츠와 에코백 등이다.

‘긴자백점’ 창간호 서문에는 이런 글이 있다. ‘격변하는 시대에도 더 훌륭한 긴자를 만들고, 번영을 이뤄야 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다.’ 다양한 점포가 뒤섞여 만들어 온 ‘조화로운 이면성(二面性)’을 이곳 사람들은 ‘긴자다움’이라고 말한다. 일본 대표 명품 거리에서 수많은 ‘100년 상점’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이자 저력은 이 단어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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