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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유출해도 "초범이라" "반성해서" 선처…'산업 스파이' 실형선고 28%뿐

[구멍난 법망 핵심기술 샌다]

<상> '느슨한 처벌법' 손질 시급

法 "기술유출 죄질 나쁘다"면서도

2021~2022년 7건중 5건이 '집유'

자백·가족탄원 이유로 감경하기도

실형도 최대 2년, 양형기준 밑돌아

'중범죄 아니다' 잘못된 인식 퍼져

"최고형 엄벌 법적보호망 강화해야"


2021년 초 국가정보원에 첩보가 입수됐다. 2차전지 핵심 소재인 양극재 생산 업체 A사 퇴직 연구원들이 해외 경쟁 업체로 옮기려 한다는 내용이었다. 국정원은 이들이 상용 e메일이나 클라우드 등으로 국가 연구개발(R&D) 과제를 포함한 기술 자료를 유출하려는 정황을 포착해 검찰에 이첩했다. 결국 A사 퇴직 연구원들은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부정경쟁방지법) 위반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하지만 법원은 이들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해마다 끊이지 않는 산업기술 유출 범죄를 엄단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는 배경에는 ‘우리나라가 자칫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에서 낙오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자리하고 있다. 2018년부터 2022년까지 국정원이 적발한 산업기술 유출 사건은 93건으로 피해액만도 25조 원에 달한다. 특히 해외로 빼돌려진 산업기술 3건 가운데 1건은 국가핵심기술이었다. 게다가 산업기술 유출 수법이 해마다 교묘해지는 데 반해 법적 처벌 수위는 ‘솜방망이’ 수준에 머물고 있어 ‘깨진 유리창 법칙’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지적마저 나온다. 낮은 수준의 처벌이 화이트칼라(샐러리맨, 사무직 노동자)들에게 ‘산업기술 유출이 중범죄가 아니다’라는 인식을 가지게 함으로써 사건이 한층 증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산업기술 유출 범죄에 대한 양형 기준을 상향하는 등 현실화하고 초범까지도 엄히 처벌하는 이른바 ‘법적 보호망’을 정비해나가야 한다는 주장이 산업계는 물론 법조계에서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이유다.

19일 국정원에 따르면 최근 5년 동안 산업기술 유출 피해가 가장 큰 분야는 반도체·디스플레이로 나타났다. 이 기간 두 분야에서 유출된 기술은 각각 24건·20건에 달했다. 해외로 빼돌려진 기술 가운데 총 14건의 국가핵심기술이 포함됐다. 2차전지·자동차·정보통신 분야에서도 각각 7건의 산업기술이 유출됐다. 총 21건 가운데 국가핵심기술은 11건으로 절반에 달했다. 조선 분야의 경우 해외로 유출된 산업기술 가운데 단 1건을 제외하고 5건이 국가핵심기술이었다. 반도체나 2차전지 등 기술 패권을 둘러싼 국가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국내 산업기술을 자국으로 빼내려는 해외 경쟁 회사들의 시도가 줄을 잇고 있는 셈이다.

특히 국가핵심기술을 침탈하려는 글로벌 경쟁 회사의 수법이 해마다 교묘해지고 있어 국가적 산업기술 보호막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실제로 배터리 분야의 경우 국내 연구 인력 이직에 대한 법적 분쟁을 회피하려는 이른바 ‘징검다리 이직’마저 등장했다. 이는 경쟁 회사가 기술적으로 연관이 없는 자회사 등에 국내 연구 인력을 취업시키는 방식이다. 국정원 관계자는 “위장 회사로 옮기게 한 뒤 실제로는 연구 인력으로 하여금 경쟁 회사에 기술을 전달한다”며 “중국이나 유럽 기업들이 해당 방식을 통해 전직 금지 가처분 소송 등 법적 조치는 물론 동종 업계 이직 금지에 따른 제재조차 무력화시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회사 내에 조력자를 확보해 핵심 기술을 빼가거나 대기업 협력 회사에 대량 구매 등을 미끼로 접근, 기술이나 제품 샘플을 우회 확보하려는 시도마저 이어지고 있다. 현지 인적 네트워크를 보유한 리서치 전문 업체 등을 통해 핵심 정보를 수집하도록 하거나 공동 연구를 빙자해 자국 연구원을 국내 대학·연구소에 파견, 기술 유출의 통로로 이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국내 처벌 수위는 여전히 집행유예나 벌금형에 그치고 있다.



서울경제가 2021~2022년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등 7개 사건의 1심 판결을 분석한 결과 실형 선고는 단 2건에 불과했다. 이마저도 징역 1년 6개월~2년으로 현행 양형 기준에도 크지 미치지 못했다. 현재 영업비밀 침해에 대한 양형 기준은 국내외의 경우 최고형이 각각 4년, 6년이다. 나머지 5건은 모두 집행유예였다.

법원은 각 사건의 양형 사유에서 ‘피해 회사로부터 용서받지 못했다’거나 ‘죄책이 가볍지 않다’고 설명했다. 특히 산업기술 유출을 ‘피해 회사에 상당한 손해를 끼칠 위험이 있는 행위일 뿐 아니라 시장 경쟁 질서에 위협을 가하고 새로운 R&D에 대한 동력을 상실시킬 수 있는 범죄’로 지적했다.

하지만 이들 사건 가운데 6건에서 ‘초범’이 감경 사유 가운데 하나로 쓰였다. 또 반성한다(5건)거나 피해 회사 손해가 현실화됐는지 불분명하다(5건)는 점도 처벌 수위를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자백했다거나 가족들이 탄원서를 냈다는 등의 요인도 감형 사유로 반영됐다.

산업기술 유출 분야에 정통한 법조계 관계자는 “해마다 국가핵심기술이 해외로 빼돌려지는 사건이 이어지고 있으나 최고 처벌은 징역 4년이었다”며 “이런 추세가 이어질 경우 사적 이익을 위해 본인이 몸담던 회사의 기술을 해외로 빼돌리더라도 처벌이 크지 않다는 인식만 커지게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이는 사실상 산업기술 유출 범죄를 방치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며 “국가 경쟁력 저하를 막기 위해서라도 양형 기준을 높이고 초범도 강하게 처벌하게 하는 등 법적 보호망을 강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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