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경림 차기 KT 대표이사 후보가 27일 공식 사퇴했다. 이로써 KT의 경영 공백 사태가 기정사실이 됐다. 직원 5만 8000명을 이끄는 대표 후보직을 정기 주주총회 개최일을 나흘 앞두고 사퇴한 윤 후보자의 행동이 무책임해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이해도 간다. 그도 정치권의 인사 개입과 검찰의 수사 압박 속에서 대표직이라는 ‘불구덩이’에 몸을 던지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여당은 기어코 ‘윤심(尹心·윤석열 대통령 의중)’을 받은 인사를 KT 대표 자리에 앉히려는 듯하다. 그러나 KT 내외부는 물론 대주주들마저 윤심을 얻은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없어 갈팡질팡하고 있다. “차라리 누굴 원하는지 말해줬으면 좋겠다”라는 말까지 나오지만 여권은 그 어떤 카드에도 비토만 할 뿐 묵묵부답이다. KT 주주들과 이사회는 알아서, 눈치껏, 정권 입맛에 맞는 새 대표 후보자를 구해야 한다.
정권은 도대체 어떤 인물을 KT 대표에 앉히고 싶은 것일까. 여당은 KT 대표 최종 후보에 외부 인사가 없다며 ‘이권 카르텔’이라고 비난했다. 지난 대표 경선에서 33명의 지원자 중 비KT 출신은 7명에 불과했다. 이 중 여당 정치인 출신이거나 여당과의 ‘끈’이 있는 인물은 5명으로 모두 기업 경영 경험이 없다. 이들을 제외하면 전자업체 부사장 출신과 국책은행 전문위원만이 남는다. 이들은 자산이 40조 원에 달하는 국내 대표 통신기업 최고경영자(CEO)를 맡기에는 이력이 부족하다는 게 중론이다.
아마도 대통령실을 비롯해 정부 여당은 노무현·문재인 정부 때 꾸려진 현 KT 이사진 자체가 문제라는 생각을 지닌 듯하다. 정치권이 민간 기업의 인사에 개입하는 것도 문제지만 정치권에서 내려보내는 ‘낙하산 사외이사’ 또한 사라져야 할 구시대 유물이다. 이유야 어찌됐든 현 KT 이사회는 대표 선임 차질로 경영 공백이 발생한 데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마침 31일 주주총회에서 3명을 제외한 사외이사 임기가 끝난다. 아예 이사회부터 ‘새판’을 짜고 공정하고 투명하게 새 대표 선임에 나섰으면 한다. 물론 새 이사진에서 정치권 인사를 배제해 잡음이 나올 요소를 원천 차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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