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공적연금 운용공사(APG·All Pension Group) 고위 간부가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합병 의혹’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다. 세계 3대 연기금 운용회사인 APG는 앞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회사 자산이 대주주 승계 작업 실탄으로 사용돼서는 안 된다’며 반대 의견을 낸 곳이다. 게다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당시 부회장)이 그룹 지배구조 개선, 주주 소통 강화를 위해 직접 APG 측과 접촉한 바 있어 향후 어떠한 증언이 나올지 주목된다.
5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2부(박정재·지귀연·박정길 부장판사) 심리로 7일 열리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 위반 등 혐의 92회 공판기일에 박유경 APG 아태지역 총괄이사가 출석한다. 이날 재판에는 이 회장도 직접 출석한다. 이 회장은 경영권 승계를 위해 삼성 미래전략실 주도로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계획적으로 추진하고, 이 과정에서 회계 부정·부정거래를 저지른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박 이사에 대한 증인 채택은 검찰 측 요청에 따라 이뤄졌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당시 해외 주주가 어떠한 의견을 가지고 있는지가 중요해 박 이사를 증인으로 신청했다’는 게 검찰 측 설명이다.
검찰 측 관계자는 “APG가 세계 3대 연기금 운용사로 객관적 시각으로 증언해 줄 수 있다고 판단했다”며 “양사 합병에 대해 절차는 투명했는지 또 합병 비율은 정당했는지 등을 묻고자 박 이사를 증인으로 요청했다”고 밝혔다. 박 이사가 양사 합병 당시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증인으로 공판에서 상당히 의미있는 증언이 나올 수 있다는 얘기다.
향후 공판에서 박 이사의 입에 법조·산업계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이유는 그의 증언이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시아 책임 투자를 담당하고 있는 박 이사는 앞서 2015년 6월께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그들(삼성)이 주주들의 우려를 듣고 있느냐”며 반문한 바 있다. 또 “그들이 다리를 불태운 셈”이라며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반대 뜻을 분명히 했다. 당시 APG가 보유하고 있는 삼성물산 지분율은 0.3%에 불과했으나 전체 운용 자산이 4689억달러 규모에 달해 외국인 주주들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고 알려졌다.
이 회장이 같은 해 11월께 박 이사를 직접 만난 점도 APG가 해외 주주들에게 미칠 영향력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 부회장은 2015년 11월 8일 서울 서초동 삼성사옥에서 박 이사를 만났다. 이 자리에서는 제일모직 합병을 의결하는 삼성물산 주주총회가 직접 거론되지는 않았으나, 합병 법인의 중장기적인 지배구조 개선 방안에 대해 집중적으로 이야기가 오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 회동 직후 APG는 당시 삼성물산 최치훈 사장과 김신 사장, 삼성 미래전략실 고위 임원들과도 만남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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