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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리] 국민연금은 누구를 위해 의결권을 행사하나

김한규 더불어민주당 의원

김한규 더불어민주당 의원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란 기관투자가가 투자 대상 기업의 경영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행동 지침을 말한다. 낯설고 생소한 이 말은 국민연금과 같은 연기금이 국민들로부터 받은 막대한 돈으로 어떤 기업에 투자했으면 방치할 것이 아니라 마치 주인의 재산을 관리하는 집사(steward)처럼 운용하라는 의미다. 투자 기업의 의사결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경영을 감시해 주인인 국민에게 이익이 되도록 더 많은 수익을 내라는 의미로 풀어 설명할 수 있다.

국민연금은 주인인 국민들을 위해 기금이 고갈되지 않도록 안정된 수익을 확보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다. 투자 회사에 대한 주주로서의 관여도 여기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하지만 최근의 행보를 보면 국민연금은 국민이 아닌 ‘다른 주인’을 모시는 것 같다.

재계 순위 12위인 KT는 최근 대표이사 선임으로 시끄럽다. 대표이사가 연임되는 듯했으나 국민연금 이사장이 ‘소유분산기업’의 지배구조를 문제 삼으며 이에 대해 노골적으로 반대하기 시작했다. 때마침 공정거래위원회는 KT계열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개시했고 정부의 의사가 표출된 후 대표이사 후보로 선출된 2명이 연이어 사퇴했다. 지난해 12월부터 이어진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주주로서 적극적으로 경영에 참여한 결과는 어떠했나. 꾸준히 오르던 KT의 주식 가치는 국민연금이 KT의 인사를 공개 비판한 후 오히려 3거래일간 10% 이상 급락하고 말았다.



여기서 우리는 정부가 ‘소유분산기업’ 내지 ‘주인 없는 기업’을 어떻게 이해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우선 ‘주인 없는 기업’이라는 말은 소위 ‘오너’라고 불리는 대주주가 존재하는 기업집단에 익숙한 우리나라에서 자주 쓰이지만 명백히 틀린 말이다. 회사의 주인은 주주이고 KT는 상장회사로 오너가 없을 뿐이지 오히려 주주는 많다. 금융지주사나 민영화된 공기업이 아니더라도 기업이 상장돼 지분이 희석되면 대주주가 없어지거나 단순 투자 목적의 대주주만 존재하는 회사가 될 수 있다. 미국 등 자본시장이 발달된 나라에서는 이런 회사가 오히려 일반적인 형태다.

대주주가 없으니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생각은 구시대적이고 왜곡되기 쉽다. 대주주가 없더라도 매일 바뀌는 주가가 경영진의 성적을 매기고 성과를 못 내는 ‘고인물’이 되면 경영권을 뺏으려는 투자자들이 달려들 것이다. 부당한 공격이면 백기사를 구할 수 있는 정도의 시장은 마련돼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코드에 맞는 사람으로 공공기관장을 바꾸고 대선 캠프에서 일한 사람들로 공기업의 임원진을 채우는 것도 모자라 민간 기업으로 상장된 회사의 경영진까지 바꾸는 것은 과도한 수준을 넘어 정권이 바뀌면 다시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는 일이다. 기업의 자유와 주주자본주의를 중시하는 나라에서 국가가 국민연금을 통해 민간 기업에 개입하는 것을 스튜어드십 코드라는 단어로 포장할 수는 없다. 이번 기회에 국민연금이 의결권을 위임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안건의 범위를 정했으면 한다. 어려우면 의결권 자문회사의 의견에 따르도록 하는 것도 방법이다.

대표이사의 공백으로 인한 손해는 주주에게 돌아가고 대주주인 국민연금의 손해는 바로 가입자인 국민의 손해다. 해외 투자자들도 이 상황을 바라보고 있으니 이런 일들이 계속되는 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피하는 것은 요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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