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제품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파악하기 위해 기업에 관련 정보를 요구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 국회에 상정되면서 산업계와 관가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환경부는 각국에서 온실가스 관련 무역 규제와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 공시 강화의 움직임이 강해지고 있는 만큼 정부 차원에서 탄소 배출 정보를 모아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산업계는 기업의 영업비밀 침해 가능성을 들어 난색을 표하고 있다.
3일 정부에 따르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간사인 김영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올 2월 ‘환경기술 및 환경산업 지원법’ 일부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환경부가 환경성평가목록 데이터베이스(LCI DB)를 구축하기 위해 제품 생산 기업이나 관련 자료를 보유하고 있는 기관에 자료를 요청할 수 있도록 근거 규정을 마련한 것이 골자다. 이 개정안은 지난달 25일 환노위에 상정됐다.
LCI DB는 각 제품이 생산될 때부터 폐기될 때까지 환경에 끼친 영향을 계량 분석해 데이터베이스로 모으는 것을 말한다. 최근 온실가스 배출 관련 규제·규범이 확산되면서 제품별 탄소 배출량을 산정할 기초 자료로 LCI DB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환경부는 이번 개정안의 통과가 시급하다고 보고 있다. 환경부는 1999년부터 LCI DB를 운영해왔지만 기업들은 영업비밀 침해를 이유로 자료 제출을 꺼려왔다. 환경부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LCI DB 국제 공유 플랫폼에 등록한 DB는 17건(2022년 기준)으로 일본(3892건), 독일(3541건), 중국(2542건)에 비해 턱없이 적다. 현행 LCI DB로는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등 해외 통상 규제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제회계기준(IFRS)재단 산하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에서 올 6월 발표하는 국제 ESG 공시 기준 최종안 대응 측면에서도 탄소 배출 DB 구축이 필요하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환노위도 최근 검토 보고서에서 “(법안이) 국제표준에 부합하는 국가 단위의 LCI DB 구축을 통해 기업의 환경성 정보 산정을 지원함으로써 제품의 환경 친화성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짚었다.
하지만 재계는 ‘정부의 자료 제출 요구권’이 기업의 영업비밀을 침해할 수 있다는 점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서도 최근 환경부에 “자료 제출 요구권을 규정하는 것이 기업의 민감한 정보나 영업상 비밀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는 의견을 제출했다. 환경부와 국회도 기업의 우려를 인지하고 있다. 환경부 관계자는 “원료 배합 비율 등 세세한 정보 대신 유·무기화합물 등 간략한 정보만 요청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영진 의원실 관계자도 “정보 제공에 대한 기업들의 부담, 그리고 정부가 정책을 만드는 데 있어서 얼마나 정보가 필요한지 함께 고려해 절충점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우리나라가 제조업 중심 국가라는 점을 들어 다른 나라보다 앞장서 LCI DB 관련 법률 등 환경 규제를 신설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의견도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유럽 등의 동향을 보고 대응하는 것이 낫지, 먼저 우리가 나서서 관련 규제를 만드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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