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미국 출장에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를 만나 차량용 반도체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두 수장 간 만남 이후 삼성전자가 대만 TSMC와의 치열한 테슬라 자율주행 칩 파운드리 수주 경쟁에서 우위를 가져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14일 삼성전자에 따르면 이 회장은 10일(현지 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삼성전자 북미 반도체연구소에서 머스크와 회동했다. 이 회장이 머스크와 별도로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머스크는 세계 전기차 시장에서 16.4% 점유율로 1위를 달리고 있는 테슬라의 수장이다. 또한 차세대 위성통신 업체 스타링크, 우주탐사 회사 스페이스X , 차세대 모빌리티 사업을 영위하는 하이퍼루프, 인공지능(AI) 기업 뉴럴링크·오픈AI 등 미래 사업 혁신을 주도하며 세계 정보기술(IT) 업계를 주름잡고 있다.
이 회장은 머스크와의 만남에서 테슬라 차량용 반도체에 관해 중점 논의했다. 머스크가 삼성전자의 실리콘밸리 반도체연구소를 직접 방문한 점과 삼성전자에서 반도체 사업을 총괄하는 경계현 사장,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사업을 책임지는 최시영 사장이 배석한 점 등은 주요 논의 내용이 반도체 협력에 관한 것이었음을 시사한다.
테슬라는 전기차 업체지만 사내 반도체 사업 역시 상당히 중요하다. 자사 자동차에서 ‘똑똑한 두뇌’ 역할을 담당하는 완전자율주행(FSD) 칩을 직접 설계하기 때문이다. 칩 설계는 물론 생산공정까지 자동차의 안전성을 좌우할 수 있기 때문에 파운드리 업체와의 치밀한 협력도 필수다.
삼성전자와 테슬라는 자율주행 반도체 분야에서 끈끈한 협력 관계를 다지고 있다.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는 테슬라의 자율주행 칩을 위탁 생산한 경험이 있다. 2019년 머스크는 테슬라의 FSD 칩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삼성전자 파운드리 14㎚(나노미터·10억분의 1m) 공정 라인에 반도체 생산을 맡겼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현재도 삼성전자는 미국 오스틴 파운드리 공장에서 테슬라의 자율주행 칩을 생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스틴 공장 내에는 10㎚대 반도체 파운드리 라인이 가동되고 있다.
두 회사 수장의 만남으로 기존 테슬라 칩 생산은 물론 삼성전자의 차세대 FSD 반도체 수주에도 긍정적인 평가가 나온다. 업계에서는 테슬라가 삼성 파운드리, 세계 파운드리 1위 업체인 TSMC 중 어떤 업체에 첨단 칩 생산을 맡길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삼성전자가 이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면 매출은 물론 세계 최대 자율주행·전기차 기업 칩을 생산하는 경험을 쌓으면서 파운드리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된다.
삼성전자는 테슬라와의 협력 추진 외에도 다양한 형태로 차량용 반도체 분야의 외연을 넓혀가고 있다. 삼성전자는 인텔의 자회사이자 자율주행 카메라·소프트웨어 개발 기업인 모빌아이의 반도체 파운드리 수주를 따내면서 영향력을 넓혔다.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분야뿐 아니라 시스템 대규모집적회로(LSI), 메모리 사업 분야도 굵직한 자동차 회사들과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삼성전자에서 시스템반도체 설계를 담당하는 LSI사업부는 최근 세계 최대 완성차 업체인 BMW에 차량용 반도체 시제품을 공급하면서 고성능 차량용 반도체 설계 프로젝트를 타진하고 있다. 메모리 사업에서는 지난해 7년 연속으로 차량용 반도체 분야에서 매출 신기록을 달성했다.
삼성전자가 차량용 반도체에 집중하는 것은 이 분야의 성장 잠재력이 크기 때문이다. 글로벌 시장조사 업체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리서치앤드마켓에 따르면 글로벌 전장 부품 시장은 2024년 4000억 달러(약 520조 원)에서 2028년 7000억 달러(약 910조 원) 규모의 성장이 예측된다. 자동차 업계의 자율주행·전장화 바람으로 자동차가 마치 ‘커다란 서버’처럼 변하면서 전자 부품 수요 역시 덩달아 늘어나는 것이다.
한편 이 회장은 이달 12일 약 3주간 미국 출장을 마치고 귀국했다. 출장에서 머스크 CEO 외에도 젠슨 황 엔비디아 CEO, 호아킨 두아토 J&J CEO, 조반니 카포리오 BMS CEO, 누바르 아페얀 플래그십파이어니어링 CEO, 크리스토퍼 비바커 바이오젠 CEO, 케빈 알리 오가논 CEO 등 세계 IT·바이오 경제를 이끄는 미국 ‘빅 샷’을 하루에 한 명 이상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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