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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십자각] 잠자는 학생 깨우면 아동학대?

박성규 사회부 차장





얼마 전 만난 지인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겠다고 해 귀를 기울였다. 고등학교 시절 담임 선생님과 전화 통화를 했다고 했다. 인생의 나침반 역할을 해준 은사에게 뒤늦게 감사 인사를 했나 하고 짐작했지만 그런 훈훈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수업 시간에 떠들었다는 이유로 뺨을 맞았는데 사과를 받겠다고 연락한 것이었다. 결과 역시 예상과는 달랐다. 선생님이 당시 일을 기억하지 못할 뿐 아니라 사과를 할 생각도 없다고 답했다고 했다. 20년도 더 지났고 학교폭력을 다룬 드라마 ‘더 글로리’의 흥행과 정순신 변호사 아들의 학폭 사태로 학폭이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르내리고 있던 시기 교사 폭력을 떠올린 이유가 궁금했다. “학폭은 학생 간의 일이지만 교폭은 학생을 보호해야 할 교사가 저지른 범죄라 잊을 수가 없다”고 했다. 체벌이 교사의 권리로 여겨지던 시절이었지만 따귀를 맞은 학생은 아직도 교폭으로 인한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교폭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고어가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혁혁한 공을 세운 건 학생인권조례다. 학생인권조례는 2010년 경기도교육청에서 최초로 제정된 후 17개 시·도 교육청 중 서울을 비롯한 6개 교육청에서 제정·시행되고 있다.

학생이 성별, 종교, 성적 지향 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고 폭력과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는 권리 등이 담겼다. 학생인권조례 덕분에 권위적인 학교 문화는 많이 타파됐다. 그러나 ‘교권 침해’라는 또 다른 문제가 불거졌다. 학생인권조례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학생 인권을 강화하는 움직임 속 교권 추락이 가속화하고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실제 잠자는 학생들을 깨웠다고 아동학대로 신고당하는 교사들의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교원 단체들은 정당한 수업 지도로 신고당하지 않도록 해 달라며 요구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교사의 정당한 학생 지도는 아동학대 적용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내용의 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교권 침해가 일부 학생들의 일탈에서 비롯된 문제라고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된다. 학교 현장에서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교사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해법 마련은 쉽지 않다. 일각에서는 교권 강화를 위해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고 실제 폐지 움직임도 존재한다. 학생 인권만을 내세운 학생인권조례가 교권 추락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진단에 따른 주장이다. ‘교사 및 다른 학생 등 다른 사람의 인권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인권조례에 담긴 문구다. 교권 관련 내용이 부족할 수는 있어도 학생 인권만 강조한 것은 아닌 셈이다. 부족하다면 보완하면 된다. 학교 현장에서 학생 인권과 교권 모두 중요하기 때문이다. 조례가 폐지되면 권위주의 학교로 돌아갈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기우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있지만 학생 인권을 볼모로 폐지를 밀어붙일 필요는 없어 보인다.



학생인권조례가 학생 인권만을 지나치게 강조했다면 교권과 상생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교육적일 뿐 아니라 효과적일 수 있다. 다행히 서울시교육청이 학생인권조례를 근거로 마련하는 3기 학생 인권 종합 계획에 학생 인권과 교권의 상생 관계를 구체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조례에 학생의 책무 규정이 있는 만큼 서울시교육청은 보다 전향적으로 학생 인권과 교권 상생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학생 인권과 교권이 조화롭게 상생할 때 학교가 제 기능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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