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005930)가 증권가 추정치의 두 배가 넘는 2분기 영업이익을 기록하고도 ‘6만전자’로 추락했다. 영업이익 규모가 15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에 도달한 데다 반도체(DS) 부문이 수조 원대 적자를 이어간 것으로 추정되면서 이에 대한 실망 매물이 쏟아진 탓이다. 증시 전문가들은 반도체 업황이 바닥을 다진 만큼 삼성전자가 이달 말 내놓을 사업 비전에 따라 중장기 주가 향방도 달라질 것으로 내다봤다.
7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전날보다 1700원(2.37%) 내린 6만 99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삼성전자의 주가가 6만 원대를 기록한 것은 5월 25일 이후 40여 일 만에 처음이다. 주가 하락 폭도 4월 25일(2.45%) 이후 가장 컸다. 이날 코스피지수 하락률(1.16%)의 두 배가 넘는 수준이었다.
삼성전자의 하락을 주도한 수급 주체는 기관과 외국인투자가들이었다. 기관투자가는 삼성전자를 연중 최고 수준인 2221억 원어치 순매도하면서 4거래일 연속 ‘팔자’ 행보를 보였다. 지난달 22일부터 전날까지 11거래일 연속 순매수세를 이어오던 외국인은 862억 원 순매도로 돌아섰다.
삼성전자 주가가 맥을 못 춘 것은 이날 회사가 발표한 2분기 실적이 시장의 최근 눈높이를 충족하기에는 부족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금융 정보 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밝힌 2분기 영업이익 잠정치 6000억 원은 최근 3개월 국내 증권사의 평균 전망치인 2818억 원의 두 배를 웃도는 수준이다. 다만 지난달 말 미국 메모리반도체 기업인 마이크론테크놀로지가 지난 분기 깜짝 실적을 발표한 영향으로 막판으로 갈수록 증권가의 기대치는 점점 높아졌다. KB증권은 이달 5일 삼성전자의 2분기 영업이익 전망치를 9000억 원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여기에 미국의 긴축 기조가 강화될 조짐을 보이면서 외국인 투자심리가 얼어붙은 점도 삼성전자 주가에 부담을 줬다는 분석이 나왔다.
김선우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최근 주가 상승 속 우호적인 환율 흐름과 반도체 수출 개선 추이 등을 감안하면 다소 아쉬운 실적으로 평가됐다”고 말했다. 김태홍 그로쓰힐자산운용 대표도 “실적뿐 아니라 미국 반도체 주가가 최근 하락세를 보인 것과 이날 외국인이 1조 원 넘게 코스피200 선물을 순매도하는 등 수급적인 이슈가 복합적으로 연관돼 주가가 하락한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증시 전문가들은 삼성전자의 중장기 주가 방향성은 이달 27일 열리는 기업 설명회에서 판가름 날 것으로 예상했다. 삼성전자가 소개하는 각 부문별 업황과 이에 대한 대응 전략을 확인한 뒤 투자자들이 본격적인 움직임을 보일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전문가들은 우선 반도체 부문의 경우 하반기부터 다소 나아지는 성적표를 손에 쥘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이미 2분기 반도체 부문의 적자 폭도 1분기 4조 5800억 원보다 줄어든 3조~4조 원 수준이 됐다고 추정했다. 특히 삼성전자가 감산 규모 등을 선도적으로 정할 수 있는 우월한 위치에 있는 만큼 설명회에서 내놓는 세부 사업 전략에 따라 외국인의 순매수세가 다시 유입될 수도 있다고 관측했다.
1분기 실적 버팀목이었던 모바일경험(MX) 부문에 관해서는 신제품 효과를 두고 봐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하반기에 출시할 갤럭시Z5 시리즈에 대한 시장 반응이 주가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시각이었다. 전문가들은 2분기 갤럭시S23의 판매량이 감소하면서 MX 부문의 실적이 1분기보다는 저조했을 것으로 추산했다.
남대종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3분기 반도체 부문은 재고 평가손이 줄어들면서 2분기보다 실적이 개선될 것”이라면서도 “전방 수요가 둔화하는 MX사업부가 어떤 비전을 내놓는지가 주가 향방에 중요하다”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