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적인 호우로 농가 피해가 속출하면서 유통업계가 산지의 시름과 고객의 물가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다. 기후 요인으로 생육이 부진한 ‘B급’ 농산물을 대량 매입해 농가 소득에 도움을 주는가 하면 상생 상품 기획 및 대체 산지 발굴로 물가 경감에 앞장서고 나선 것이다.
23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편의점 GS25는 오는 8월 과일행사에 이번 수해로 피해를 본 경상북도와 충청도 지역의 과일을 대량 매입해 선보이기로 했다. 판매 품목은 경북의 못난이 사과와 충북 영동의 복숭아다. 겉에 작은 상처가 있지만, 맛에는 이상이 없는 상품을 적극 매입해 피해 농가의 판로를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슈퍼마켓인 GS더프레시도 마늘, 대파, 알배기배추 등 채소류를 중심으로 못난이 상품을 매입해 할인 판매하기로 했다.
홈플러스도 호우 피해를 본 강원 산지의 다다기오이, 청양·오이맛고추를 ‘맛난이 농산물’로 다음 달 2일까지 전 점포에서 판매한다. 홈플러스는 모양과 크기가 유통 규격에서 등급 외로 분류되지만 신선도와 맛 등 품질에는 이상이 없는 농산물을 ‘맛난이'라는 이름으로 일반 상품 대비 20~30% 저렴하게 팔고 있다.
롯데마트도 지난 21~22일 외관상의 이유로 상품성이 떨어지는 일명 ‘못난이 오이’를 약 10t 사들여 정상 상품보다 반값 이상 저렴하게 ‘상생 오이’로 판매했다. 장마 기간 침수 피해와 일조량 부족, 강한 비바람 등 기후 요인으로 정상적인 상품 출하에 어려움을 겪는 농가를 돕기 위해 기획한 행사였다. 상생 오이는 롯데마트와 슈퍼 채소팀 상품기획자(MD)들이 이번 집중 호우 직후 산지를 다니며 농가 피해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등급이 낮은 오이의 물량 증가를 예상하고 기획한 것으로 전해졌다. 장마 기간 침수 피해와 일조량 부족으로 형태가 고르지 못한 오이가 많아진 상황에서 당분간 수해 및 날씨 변수로 인한 생육 부진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농가의 판로 확보를 위해 대량 매입 및 할인 판매를 떠올린 것이다.
농가를 돕기 위한 ‘상생 상품’, ‘착한 소비’ 기획이 마음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의지가 있어도 침수 피해로 할인 판매할 원물 자체가 사라진 사례도 많기 때문이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작물이 물에 잠겨 B급으로도 판매 가능한 수준의 원물이 없는 경우가 많다”며 “태풍으로 발생한 낙과·흠집과는 피해의 결이 다른 상황”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농산물의 생육 부진과 이로 인한 농가 시름도 문제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출하량 감소에 따른 가격 급등이 적지 않은 부담이다. 실제로 최근 이상 기후 여파로 주요 농산물 가격은 무섭게 오르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지난 21일 기준 오이 10㎏ 도매가는 5만 4500원으로 한 달새 210% 넘게 뛰었다. 적상추 4㎏ 도매가도 6월 21일 1만 7360원에서 7월 21일 8만 3000원으로 380% 급등했다. 농산물 품귀 우려가 커지자 유통사들은 대체 산지를 찾아 가격 안정을 꾀하는 등 대책 마련에도 분주한 모습이다. 이마트(139480)는 폭우로 최근 시세가 많이 오른 적상추 상품의 경우 비가 덜 와 작황이 양호한 경기도 이천·여주 등 대체 산지의 물량을 확대해 도매가 대비 가격 인상 폭을 최소화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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