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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염수 시설' 난립하나…중구난방 투자 명분된 후쿠시마

◆정부·지자체 '오염수 대응' 엇박자

정부 수산물 방사능 검사 일원화에도

여수시 55억 들여 안전센터 설립

경기도는 5개 항·포구에 '1억' 전광판

지자체 재정자립도 50% 밑도는데

결국 중앙정부에 청구서 내밀 듯

전문가 "교부세로 전시행정 통제"

일본 후쿠시마 원전의 오염수 방류 설비. 연합뉴스




지방자치단체들이 안전센터 등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관련 인프라 구축에 너도나도 뛰어들고 있다. 수산물에 대한 소비자의 불신 해소가 명분이지만 정부가 이미 방사능 검사 장비 확충에 예비비 131억 원을 투입하는 등 수산물 안전 관리에 나선 상황에서 지자체가 혈세만 낭비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3일 관계 부처에 따르면 전남 여수시는 지난달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대응 수산물안전센터 건립 추진 사업’을 진행하기로 확정했다. 전남 해양수산과학원 인근 부지에 연면적 900㎡ 규모의 수산물 안전성 검사 시설을 짓는 사업으로 이르면 이달로 예정된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따른 조치다. 내년에 착공해 내후년에 완공되는 안전센터의 총사업비는 55억 원이다. 특히 여수시는 약 14억 원을 들여 고순도 감마핵종분석기 등 방사능 검사 장비도 사들일 계획이다. 여수시는 재원 확보를 위해 2년간 지역 수협에 대한 예산 지원을 줄이기로 했다. 여수시 측은 “신속·다양한 (방사능) 검사 체계를 구축해 소비자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안전센터 건립이 혈세 낭비가 될 것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수산물 방사능 검사가 국립수산물품질관리원으로 일원화된 상황에서 재정자립도가 26.87%(2023년 6월 기준)로 전국 평균(45.02%)에도 크게 못 미치는 여수시가 나설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더구나 정부는 오염수 방류에 따른 수산물 안전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자칫 안전센터가 완공되자마자 흉물로 변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이유다.

이 뿐만이 아니다. 경기도도 5억 원을 들여 궁평항 등 5개 항·포구에 발광다이오드(LED) 전광판을 설치해 방사능 검사 결과를 표기하기로 했다. 수산 업계의 한 임원은 “지자체가 선제 대응 명목으로 자체적으로 혈세를 투입함으로써 원전 오염수 방류와 관련해 중복·과잉 투자에 나선 꼴”이라며 “(조만간) 원전 오염수를 둘러싼 논란이 진화되면 이런 시설들은 애물단지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꼬집었다.



정부·지자체 정책 혼선 우려


전남 여수시가 55억 원을 들여 ‘수산물안전센터’를 건립하려는 것은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수산물 소비심리 위축으로 지역 내 수산업은 물론 관광업까지 잇따라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것이다. 2026년 개최될 예정인 ‘여수세계섬박람회’를 앞두고 지역 수산물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구축해야 한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런 대응 자체가 과학적 접근과는 거리가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전문가의 판단을 근거로 원전 오염수 방류에 따른 수산물 안전에 영향이 없음을 수차례 강조하고 있다. 그래도 소비자의 불안이 여전하자 올 6월에는 수산물 방사능 검사 장비 확충에 예비비 131억 원을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더구나 해양수산부는 이미 수산물 방사능 검사를 전담한 국립수산물품질관리원의 기능을 강화하고 있다. 수품원은 여수시가 수산물안전센터를 건립하려는 여수에도 사무소를 두고 있다. 여수시가 자체적으로 14억 원을 들여 확보하려는 방사능 검사 장비(감마핵종분석기 등)가 일종의 중복·과잉 투자로, 혈세 낭비의 성격이 있다는 의미다. 수품원을 활용하면 되므로 굳이 자체 시설을 둘 이유가 없다는 측면에서 그렇다.

다른 지자체도 경쟁적으로 원전 오염수 방류 관련 설비 구축에 나서는 움직임이 뚜렷하다. 경기도의 경우 9월부터 연말까지 궁평항·전곡항·오이도항 등 5개 항포구 외부에 대형 발광다이오드(LED) 전광판을 설치하기로 했다. LED 전광판 1개당 설치비는 약 1억 원으로 수산물 방사능 검사 결과가 표시된다. 경기도는 주요 항포구 수산물 판매장 내부에 별도의 LED 전광판을 두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수산물 업계의 한 관계자는 “오염수 논란이 가라앉으면 곳곳에 설치한 LED 전광판 자체가 흉물이 되지 않겠느냐”며 “생색내기에 가까운 전시 행정으로 비판 받을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이런 추세는 가뜩이나 세수 부족이 심각한 상황에서 중앙정부와 지자체 간 정책 혼선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지자체별로 오염수 대응 시설을 구축하려는 시도 자체가 이미 국내 수산물의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는 중앙정부의 입장과 배치되는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와 관련해 정부 관계자는 “지자체별 세부 정책 기조는 확인하지 못했다”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지만 난처한 기색이 역력하다.



가뜩이나 낮은 재정자립도 악영향


지자체의 현명하지 못한 예산 집행은 재정자립도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전국 243개 광역·기초지자체의 평균 재정자립도는 45.02%(2023년 6월 기준)다. 전체 예산에서 지방세 등 자체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뜻이다. 특히 여수시의 재정자립도는 26.87%로 전국 평균치(45.02%)보다 20%포인트 가까이 낮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여수시의 재정자립도는 눈에 띄게 낮은 수준”이라며 “불필요한 전시 행정은 혈세 낭비와 재정 건전성 악화로 귀결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자체는 중앙정부에 또 손을 벌린다는 점에서 궁극적으로는 중앙정부의 허리를 휘게 한다”고 덧붙였다.

원전 오염수 방류 관련 시설이 매년 수억 원의 운영비만 잡아먹는 애물단지로 전락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가 발생했을 당시에도 국내 수산물 소비 위축 기간은 3~4개월에 그쳤다. 이는 정부가 원전 오염수 방류를 둘러싼 논란이 이르면 연내 진화될 것으로 보는 이유이기도 하다. 실제 해수부 고위 관계자는 한 행사장에서 “(오염수 논란은) 짧게는 3~4개월, 길게는 1년 이상일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원전 오염수 방류 관련 시설이 당장 내년부터 ‘유령 시설’이 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는 의미다.

이런 사례는 부지기수다. 경남 거제시가 2011년에 추진한 ‘1592 거북선’ 사업은 제대로 된 사용처를 찾지 못해 결국 지난달 해체됐다. 전남 광양시가 113억 원을 들여 조성한 ‘백운제 테마공원’은 2018년 축구장 11개 넓이의 캠핑장과 수영장이 완공됐지만 아직 문도 열지 못했다. 서울시가 1109억 원을 투입해 만든 세운상가 공중보행로는 2022년 개통 후 1년 만에 철거 논란에 휩싸였다. 석 교수는 “정부가 지방교부세 등을 활용해 지자체의 전시 행정을 적극 통제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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