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이 기업대출 영업을 강화하며 대출 규모를 큰 폭으로 늘리는 가운데 기술 중심의 벤처·혁신 기업 대상 ‘기술신용대출’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경기 불확실성으로 스타트업 투자 시장이 위축된 상황에서 이들에 대한 유동성 지원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7일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17개 특수·시중·지방은행의 올해 6월 말 기준 기술신용대출 잔액은 307조 55억 원으로 전년 동기 330조 3513억 원 대비 7.1% 줄었다. 최근 1년간 잔액 규모가 가장 컸던 지난해 11월(343조 569억 원)과 비교하면 10.5% 감소했다. 기술신용대출 건수 역시 올해 6월 74만 9679건으로 전년 동기(84만 8852건) 대비 11.7%, 지난해 11월(88만 4378건) 대비 15.2% 줄었다.
5대 시중은행 중에서는 우리은행의 규모가 가장 많이 줄었다. 우리은행의 올해 6월 말 기술신용대출 잔액은 34조 20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3%, 지난해 11월 대비 21% 감소했다. 대출 건수 역시 지난해 6월 9만 1072건에서 올해 6월 6만 6713건으로 2만 5000건가량 줄었다. 지방은행에서는 전북은행의 감소 폭이 가장 컸다. 올해 6월 전북은행의 기술신용대출 잔액은 81억 원으로 전년 동기(711억 원) 대비 무려 88% 이상 감소했다.
이 같은 은행들의 행보는 최근 중소기업대출을 늘리고 있는 분위기와 대조적이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기술신용대출을 포함한 예금은행들의 중소기업대출 규모는 올해 1월 989조 8000억 원에서 5월 1008조 원으로 증가했다.
전체 중소기업대출의 규모는 늘어났는데도 기술신용대출이 오히려 감소한 것은 지난해 8월 ‘기술신용평가(TCB)’ 기준이 강화되면서 기존 차주 중 상당수가 대출 연장이 어려워져 공급 규모가 줄어든 영향이 크다. 기술신용대출은 기술력과 성장 가능성을 중심으로 기업을 평가해 자금을 지원해주는 제도로 자본이 부족해 담보력이 약한 기술집약형 중소기업의 자금 지원 창구로 활용된다. 이때 일종의 담보 역할을 하는 게 금융 당국에서 발급해주는 TCB인데 이에 대한 심사 기준이 강화되면서 대출을 받을 수 있는 기업 수 자체가 줄어든 것이다.
금융 업권의 한 관계자는 “기술신용대출제도가 시작된 이후 기술 중심이 아닌 기업들이 TCB를 발급받는 사례가 생기면서 지난해 기술평가품질관리위원회가 신설되는 등 심사가 좀 더 강화됐다”며 “이 영향으로 대출 실행 자체가 줄어들고 있고 이 같은 추세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부터 계속돼온 고금리 현상도 자본력이 약한 기술 중심 기업에는 대출 부담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기술신용대출을 받으려는 기업의 대부분은 통상 담보로 활용되는 자산이 상대적으로 없는 경우가 많다”며 “기술신용평가 심사마저 강화된 가운데 이 기업들에 높아진 대출금리는 훨씬 더 큰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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