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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죄율 30%·유죄도 고작 1년형…솜방망이 처벌 '기술간첩' 키운다

[경제안보 흔드는 산업스파이]

<하>국부 유출 부추기는 낡은 양형기준

반도체·자율주행 자료 빼돌려도

집행유예·벌금형 선고가 대부분

3년 이상 징역형 규정과 큰 차이

적발돼도 이익 더 커 범죄유혹에

기술유출 막기 위해 양형기준 상향

피해산정 제도 마련도 서둘러야





검찰은 삼성전자에서 반도체 업무를 담당하던 A 씨를 미국의 경쟁 기업으로 이직하기 위해 최신 반도체 초미세 공정과 관련한 국가핵심기술 및 영업 비밀 등 수십 건의 파일을 유출한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재판부는 기술이 해외로 유출되지 않았다고 판단해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 벌금 1000만 원을 선고했다. 징역 5년에 벌금 1억 원을 구형했던 검찰은 법원 판결에 반발해 항소했다.

A 씨의 사례는 산업기술 유출 범죄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한 우리 사법 체계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우리나라는 2019년 8월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산업기술보호법)을 개정해 국가핵심기술의 해외 유출시 3년 이상의 징역과 15억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도록 했다. 그러나 온정적 법원 판례들로 인해 처벌 규정과 실제 양형의 괴리가 너무도 크다.

전 세계적으로 경제 간첩이나 다름없는 산업 스파이에 의한 기술 유출 범행 수법이 점점 교묘하게 진화하면서 해외 각국이 선제적 예방 차원에서 처벌을 강화하는 것과 달리 국내에서는 처벌 수위가 솜방망이 수준이라는 비판이 높아지고 있다. 장항배 중앙대 산업보안학과 교수는 “턱없이 낮은 처벌이 기술 유출 판을 키웠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며 “법원이 실제 판결을 내릴 때 적용하는 지식재산권범죄 양형 기준이 법정형에 비해 크게 미달하고 있어 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3일 서울경제신문이 최근 5년간(2018~2022년) 대법원 사법연감을 분석한 결과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처리된 1심 형사공판 사건은 총 97건이다. 이들 사건은 집행유예 36건, 무죄 29건, 기타 16건(공소기각 등), 유기형 9건, 재산형 7건 순으로 판결됐다.

범죄의 심각성과 다르게 5년간 실형(유기형) 선고를 받은 사건은 9건에 불과했다. 특히 이 기간 산업기술 유출 사건의 무죄 선고 비율은 29.9%로 나타났다. 거의 3명당 1명이 형벌을 피한 셈이다. 이 같은 무죄율은 일반 형사 사건(무죄율 1%대)보다 무려 30배가량 높다. 유죄가 선고되더라도 평균 형량은 12개월 수준에 그쳤다. 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경제안보와 관계되는 기술 유출 범죄에 대해서는 글로벌 수준으로 양형 기준을 끌어올려야 한다”며 “특히 국가핵심기술의 유출은 일반적인 영업 비밀과는 달리 국가 경제 전체에 피해가 발생할 수 있어 특별범죄군, 일종의 기술 간첩 사건으로 분리해 엄벌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기술 유출에 대한 낮은 양형이 산업 스파이 활보를 확산시키는 데 일조했다는 지적은 산업계에서도 많아지고 있다. 기술 유출 사건이 적발되더라도 감내해야 할 리스크보다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익이 더 크기 때문에 기술 유출 범죄에 대한 유혹을 키운다는 것이다.



국가정보원 산업기밀보호센터에 따르면 기술 유출과 관련한 양형은 산업기술보호법에 명시된 최고형(국내 10년·국외 15년)과 비교하면 한참 아래단에 위치한다. 국내 유출 양형은 기본 징역 8개월~2년인데 가중처벌을 하면 최대 4년이다. 국외 유출 역시 기본이 징역 1년~3년 6개월이고 가중처벌을 해도 최대 6년에 불과하다. 법률에 명시된 내용과 비교해도 절반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국정원 산업기밀보호센터 관계자는 “법원에서 선고되는 형량은 △부정한 목적 입증 곤란 △이익 미실현 △초범 등의 감경사유가 적용돼 집행유예나 벌금형 선고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법원도 나름의 고충이 있다. 재판을 진행하다 보면 기술 유출 피해(액) 산정이 쉽지 않다고 토로한다. 기술 유출 범죄의 특성상 미공개 기술에 대한 가치를 판단해야 하는데 그 진가를 온전히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검찰 역시 답답하기는 비슷하다. 수도권의 한 부장검사는 “기술 유출 사건 재판 내내 피고인 측 변호사와 피해액 산정을 두고 서로 간의 수학 계산이 타당하다며 논리 싸움을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했다.

예컨대 지난해 2월 삼성전자 자회사 세메스의 국가핵심기술을 유출한 B 연구원이 유출시킨 피해액은 700억 원이 넘지만 형량은 겨우 4년에 그쳤다. 2심이 진행 중인데 재판의 장기화로 피해액 산정 가치가 떨어질 수밖에 없어 양형은 크게 낮아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미국의 경우 연방 양형 기준을 통해 피해액에 따라 범죄 등급을 조정하고 형량을 대폭 확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기술 유출은 기본적으로 6등급의 범죄에 해당해 0~18개월까지 징역형을 선고하지만 피해액에 따라 최고 36등급까지 상향할 수 있다. 만약 B 연구원이 미국식 양형 기준을 적용받았다면 최대 33년 9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을 수도 있었다. 우리나라도 기술 유출 피해산정 제도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은 이 같은 까닭이다.

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박사는 “기술 유출 범죄 양형 개선 및 엄정한 손해배상과 몰수·추징 집행을 위해서는 객관적인 비용 산정을 통해 경제적 피해 규모를 추정할 수 있는 모델 개발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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