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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상논단]자율이 혁신을 낳는다

◆김복철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 이사장

직원들 자율성 줬더니 생산성 향상

이스라엘 와이즈만硏도 자율 보장

노벨·튜링상 수상자 잇따라 배출

韓도 창의성 끌어낼 환경 조성해야





요즘 ‘헬리콥터 부모’라는 용어가 자주 언급된다. 자녀 주변에서 헬리콥터처럼 떠다니며 모든 일에 간섭하는 부모를 칭하는 말이다. 헬리콥터 부모의 극성은 교육 현장에 대한 간섭을 넘어 군대와 직장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한다. 자녀가 실패를 경험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부모의 마음은 이해가 가지만 많은 연구는 부모의 과도한 보호와 간섭이 자녀의 자기 효능감, 자아 존중감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한 헬리콥터 부모의 자녀들은 부모에게 혼나지 않기 위해 시키는 것만 하게 되면서 창의성·자발성·주도성 등이 낮다고 한다.

과도한 간섭의 부작용은 기업에서도 나타난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이던 번스타인 교수는 중국의 한 제조업 공장에서 흥미로운 실험을 진행했다. 이 공장의 직원들은 작업장에서 각각의 역할인 조립 업무를 하고 관리자들은 그 주변을 걸어 다니면서 직원들이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감독하는 방식으로 작업이 이뤄지고 있었다. 실험에서는 공장을 반으로 나눠 한쪽은 기존 방식대로 작업을 진행하고 다른 한쪽은 커튼으로 가려 관리자들이 볼 수 없도록 했다. 관리자가 보이지 않으면 생산성이 얼마나 떨어지는지를 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실험 결과는 정반대였다. 커튼으로 가려졌던 작업장의 생산성이 오히려 10~15%가량 높게 나온 것이다. 관리자의 감독에서 벗어난 직원들은 동료들과 대화를 나누며 자발적으로 업무에 대한 개선안을 논의하면서 일을 진행함으로써 자기 주도성은 물론 생산성도 올라가는 결과가 나오게 된 것이다.



자율성이 무엇보다 중요한 곳이 연구개발(R&D) 분야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R&D 투자 비율 세계 1위인 이스라엘의 와이즈만연구소는 연구자들에게 최대한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이는 연구의 성패를 좌우하는 창의성은 외부적 통제와 조정에 의해 발현되는 것이 아닌 연구자가 자신의 역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자율성이 보장될 때 발현된다는 것이 조직 운영의 기본 원칙이기 때문이다. 와이즈만연구소는 30년 뒤를 바라보면서 연구자를 지원하고 있고 연구자들은 도전적으로 다음 세대를 위한 연구를 하는 것을 기본적인 의무로 삼고 있다. 이러한 운영 방침에 힘입어 와이즈만연구소는 세계 3대 기초과학 연구소로 인정받고 있고 1명의 노벨상 수상자, 3명의 튜링상 수상자를 배출해낸 바 있다.

이스라엘에 이어 GDP 대비 세계 2위의 R&D 예산을 지출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은 어떠한가. 10여 년 전부터 정부와 연구 현장에서 줄기차게 외쳐온 도전적인 퍼스트 무버 연구는 현재 얼마나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가. 그리고 수많은 토론장에서 발제하고 토론해왔던 혁신적인 제도와 시스템들은 어떻게 준비돼 작동하고 있는가. 우리나라의 국책 연구소인 정부출연연구소들은 와이즈만연구소처럼 자율과 창의에 기반한 혁신적인 연구에 마음껏 도전할 수 있는 연구 환경을 얼마나 갖추고 있는가.

영국의 수학자 고드프리 해럴드 하디는 연구자에게는 연구 동기가 세 가지 있다고 했다. 첫째는 진리에 대한 지적 호기심, 둘째는 성과를 이루려는 직업적 자긍심, 셋째는 명성과 지위에 대한 야심이다. 즉 연구자들은 지적 호기심을 자극받아 성과를 창출해내고 직업적 사명감과 자긍심을 지켜줄 수 있는 적절한 수준의 대우를 받으며 통제나 간섭보다는 자율적으로 창의성을 최대한 발현할 수 있는 능동적인 주체가 되기를 원한다. 과학기술력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지켜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의 하나이며 이의 주체는 자율과 창의로 똘똘 뭉친 연구자들이어야 한다.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이제라도 우리 연구자들의 자긍심이 꺾이지 않고 혁신적인 연구에 마음껏 도전할 수 있도록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연구 환경을 만드는 것이 대한민국 과학기술 정책의 기본 철학이자 지상 목표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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