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이후 고용률이 상승하고 실업률은 하락하는 이른바 ‘고용 호조 성장(Job-rich recovery)’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근로자 선호, 근무여건, 산업구조 등이 빠르게 변화한 결과다. 다만 고용 호조 성장으로 노동 공급은 늘어났으나 고용 재조정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노동생산성은 오히려 떨어지고 있다.
24일 한국은행 조사국 고용분석팀은 ‘팬데믹과 Job-rich recovery’ 보고서를 통해 “팬데믹 이후 경기 회복과정에서 고용률이 빠르게 상승하고 실업률이 하락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과거 경기 회복기에 ‘고용 없는 성장(Jobless recovery)’이 발생한 것과 비교하면 매우 이례적인 상황이다.
고용 호조 성장이 이뤄지고 있는 것은 팬데믹으로 충격을 받았던 대면서비스업을 중심으로 고용이 회복되기 때문이다. 대면서비스업은 학력이나 기술 요건이 상대적으로 낮아 노동수급이 원활하게 이뤄지고 있다. 팬데믹 이후 일과 삶의 균형(work life balance) 선호, 여성 노동시장 참여 확대 등으로 근로시간이 감소한 것도 고용 호조 배경으로 작용했다는 설명이다.
여성 노동 공급에 우호적인 근로 환경이 조성되면서 여성 고용이 큰 폭 증가하기도 했다. 기혼 여성의 유연근무제 활용 비중은 2019년 14.4%에서 2021~2022년 20%를 넘어섰다. 재택근무 활용 비중은 팬데믹 이전 대비 7배 이상 증가했다. 또 인력난을 겪는 기업들이 예비적 동기로 기존 취업자들의 고용을 유지하는 상황도 이어지고 있다.
여성 노동 공급을 중심으로 고용 호조 성장이 나타난 결과 노동 공급 기반이 확대됐다. 여성의 경제 활동 참가율이 10년 동안 상승하면서 미국 수준으로 격차가 줄어들 경우 2023~2052년 노동 공급은 연평균 152만 명 늘어나는 것으로 분석됐다.
문제는 고용 재조정이 충분히 이뤄지지 못한 상태에서 노동시장이 빠르게 회복하면서 노동생산성에 부정적인 영향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경기침체를 겪으면 저생산성 기업·산업에서 고생산성 기업·산업으로 고용이 이동하면서 노동생산성이 늘어나는데 이번엔 이런 과정을 겪지 않았다. 그 결과 팬데믹 이후 산업간 고용 재조정의 노동생산성 기여도가 2.8%포인트 상승했는데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4.6%포인트)보다 낮은 수준이다. 금융위기 때 고용률이 0.7%포인트 감소한 반면 팬데믹 당시엔 고용률이 1.7%포인트 줄어든 것을 감안하면 미약한 수준이다. 이마저도 빠르게 하락 중이다.
오삼일 한은 고용분석팀장은 “Job-rich recovery 과정에서 여성을 중심으로 노동공급 기반이 확대된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되나, 고용 재조정이 원활히 이루어지지 못한 채 노동시장이 빠르게 회복하면서 노동생산성 증가세는 둔화됐다”며 “ 노동시장 경직성, 팬데믹 기간 중 고용유지 지원 정책 등으로 인해 산업간 고용 재조정이 활발하지 못했던 점은 앞으로도 노동 생산성 증가에 제약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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