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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해줄 수 없는 일, 파트너십 [정혜진의 Why not 실리콘밸리]

올해 실리콘밸리서 최대 화두로

'양방향 협력' MS 가장 큰 활약

'지시·보고' 단순한 형태 벗어나야

지난달 15일(현지 시간) 미국 시애틀 컨벤션 센터에서 진행된 ‘이그나이트 2023’에서 사티아 나델라(왼쪽) MS CEO가 깜짝 등장한 젠슨 황 엔비디아 CEO와 파트너십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 제공=MS




올해 실리콘밸리 빅테크 행사의 ‘최다 게스트’로는 단연 엔비디아의 젠슨 황 창업자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8월 VM웨어의 연례행사 기조연설에 깜짝 등장한 뒤 며칠 간격으로 열린 구글 클라우드 자체 행사 ‘넥스트 23’에도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검정색 가죽 재킷은 모습을 드러냈다. 빅테크가 저마다 행사를 열면서 기조연설의 메시지를 고민할 때 발표 내용만큼이나 고심하는 것이 깜짝 게스트다. 회사의 주력 방향을 가장 간결하게 보여주는 방식이면서 더 세련되게 업계에서 회사의 위치를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응하는 입장에서도 상대 회사와의 파트너십을 중요시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채널이기 때문에 사방에서 러브콜을 받는 황 창업자가 가장 신경을 쓴 부분이기도 하다.

올해 실리콘밸리가 꽂힌 분야는 파트너십이었다. 챗GPT를 시작으로 한 생성형 인공지능(AI) 열풍으로 막대한 양의 대규모언어모델(LLM)을 훈련시키기 위해서는 컴퓨팅 자원이 필요한 한편, 이를 바탕으로 구현된 다양한 생성형AI 서비스가 확보돼야 했다. 수익화는 그다음 문제다. 모바일 시대에는 양대 모바일 운영체제를 주도하는 애플과 구글을 중심으로 한 생태계에 줄을 서야 했지만 이제 그 구도가 완전히 변화한 것이다.

이 가운데 가장 활약을 보인 기업은 만장일치로 마이크로소프트(MS)가 꼽힌다. 모바일 시대 화석 취급을 받던 MS는 올 1월 챗GPT 개발사인 오픈AI와 재빠르게 광범위한 파트너십을 발표하며 오픈AI의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MS의 전 제품군에 챗GPT를 도입하고 MS 클라우드 애저 서비스에 생성형AI 기능을 대폭 탑재해 클라우드 업계 경쟁을 주도했다. 지난달에는 샘 올트먼 오픈AI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의 해임이라는 갑작스러운 악재를 만났지만 오픈AI와는 그대로 파트너십을 유지하면서 올트먼 CEO 개인과의 관계 역시 가져가겠다고 선언하는 강수를 뒀다. 올트먼 CEO의 복귀 이후 MS와의 파트너십은 더욱 단단해졌다.

지난달 기자가 찾은 미국 시애틀 레드먼드 MS 캠퍼스의 심장부인 33번 빌딩에서도 MS의 성공 요인을 짐작하게 하는 실마리를 만날 수 있었다. 이 빌딩은 사티아 나델라 CEO가 경영진과 함께 경영 전반을 진두지휘하는 이그제큐티브 브리핑 센터가 위치한 곳이다. 입장하자마자 복도 중앙을 가득 채운 벽화에 이런 글귀가 적혀 있었다. ‘파트너들은 더 많은 것을 가능하게 만듭니다(Partners make more possible).’

나델라 CEO에게 직접 파트너십의 비결을 물었다. 그는 “오픈AI와의 파트너십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다”라며 “MS가 슈퍼컴퓨터를 개발하지 않았다면 오픈AI는 우리를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MS의 막대한 자본을 제시하는 대신 컴퓨팅 자원과 역량으로 가장 효과적인 설득을 했다는 것이다.



제대로 된 파트너십에는 양방향의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에도 파트너사를 지칭하는 말로 협력사가 쓰인다. 하지만 정확한 대체어는 아니다. 협력이라는 좋은 뜻을 갖고 있음에도 협력사라는 단어에는 어느 정도 위계가 있다. 현장에서 이를 가장 크게 실감한다. 국내와 해외에서 테크니컬 아키텍트를 하는 엔지니어를 만났다. 그의 일은 클라우드 AI 서비스를 통해 고객사들의 수요에 맞춘 서비스 개발을 돕는 것이다. 국내 고객사와 미국 현지 고객사 간의 가장 큰 차이를 묻자 이 같은 답이 돌아왔다. “우리나라 고객사 분들은 저희와 말을 섞지 않아요.”

일을 지시하고 서비스를 받는 과정에서 중간 점검을 할 뿐 머리를 맞대고 지속적인 소통을 하는 관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반면에 현지 고객사들은 끊임없이 소통하며 되는 프로젝트를 만든다는 게 크게 다른 점이라고 했다. 대부분의 협력사는 단순히 서비스나 제품 공급 업체(벤더)에 그치는 경우가 훨씬 많다.

안타까운 점은 이런 관계가 결과물의 측면에서 볼 때 과연 어느 쪽에게 좋지 않은 일이냐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비즈니스에만 머물지 않는다. 정부에서는 해외 인재들이 참여하는 산학 협력을 늘리기 위해 연구 과제 제도를 대폭 용이하게 개선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곳의 연구자들은 막상 생각이 다르다. 한 연구자는 “서류 작업도 문제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연구 과제에 자금만 지원하면 됐다는 태도”라며 “연구자들도 더 과제에 많은 관심을 갖고 계속해 피드백을 줄 수 있는 기관의 지원을 원한다”고 언급했다. 인재도 채용의 시대에서 영입의 시대로 바뀌고 있는데 오랜 시간 공을 들여야 하는 파트너십의 경우 더욱 그렇다. 실리콘밸리 강자들도 저마다 파트너십을 위해 백방으로 뛰는 상황에서 우리 기업들과 기관들은 더욱 부지런해져야 한다. 이는 챗GPT가 해줄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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