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 2017년부터 불어닥친 블록체인 열풍에 국내 주요 기업들도 잇따라 시장에 뛰어들었습니다. 수년이 흐른 시점에서 디센터는 <블록체인 열풍, 그 후>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금융과 정보기술(IT)을 포함한 다양한 분야의 대기업들이 그동안 어떤 블록체인 전략을 펼쳤는지, 그리고 결과는 어땠는지 중간 점검한다는 취지입니다. 앞서의 시행착오와 성공 사례가 업계의 현재와 미래를 그려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일찌감치 블록체인을 새 먹거리로 낙점하고 IT 기업의 블록체인 선구자 역할을 해왔던 한글과컴퓨터가 결국 불명예 퇴장한다. 김상철 한컴 회장이 아로와나토큰(ARW)을 비자금 조성에 이용했다는 의혹에 검찰까지 나서면서 결국 블록체인 ‘손절’에 나선 것이다. 이후 사업 중단, 자회사 정리 등의 수순을 거쳐 사실상 블록체인 시장에서 퇴장했다. 대신 미래 성장 동력을 인공지능(AI) 분야에서 모색 중이다.
차세대 주력 사업으로 블록체인 낙점…보안 기술력 살려 시장 진입
한컴그룹은 지난 2017년 블록체인 시장에 첫 발을 디뎠다. 당시 한컴은 ‘한컴오피스’ 등 오피스 소프트웨어에 의존하는 수익 구조를 벗어나기 위해 신사업에 주력하고 있었다. 그 핵심엔 블록체인 사업이 있었다. 한컴그룹은 블록체인 플랫폼 위에 사물인터넷(IoT), AI, 가상현실(VR)·증강현실(AR)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을 총동원한 스마트시티를 조성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었다.
당시 한컴시큐어였던 한컴위드가 한컴그룹의 블록체인 사업을 이끌었다. 한컴위드는 국내 1세대 보안 기업으로서 보유한 암호 보안 기술력을 살려 블록체인 보안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한컴위드는 2017년 10월 현대가 3세 정대선 사장의 블록체인 결제 플랫폼 기업 현대페이와 손잡고 시장에 화려하게 데뷔, 이듬해 초 자체 블록체인 보안 솔루션 ‘한컴 블록체인 시큐리티 스위트(BSS)’를 출시했다. 이 솔루션을 활용한 프라이빗 블록체인 플랫폼 ‘한컴 에스렛저(SLedger)’도 선보였다. 김 회장은 2018년 4월 '한컴 말랑말랑 데이’에서 한컴 에스렛저 플랫폼을 공개하며 “앞으로 우리가 누릴 스마트 생태계는 전혀 다르게 발전해나갈 것인 만큼 올해부터 그 판을 짜기 위한 첫 걸음을 내딛는다”고 밝혔다.
아로와나토큰 비자금 의혹…"김 회장이 비자금 조성 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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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컴그룹이 갑작스레 방향을 튼 건 지난 2021년이다. 한컴위드는 그해 4월 해외법인 한컴싱가포르를 통해 블록체인 기반 금 거래 프로젝트 아로와나테크에 지분투자했다고 발표했다. 아로와나테크가 발행한 가상자산 아로와나토큰(ARW)은 한컴위드의 지분투자 발표 일주일 만에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에 상장됐다. 당시 아로와나토큰은 상장 30분 만에 가격이 1070배 넘게 뛰어오르며 시세조작 의혹이 일었다. 아로와나테크 법인의 자본금이 840만 원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페이퍼 컴퍼니 논란도 거셌다. 여러 의혹을 불식시키기 위해 한컴그룹은 아로와나 프로젝트의 국내 운영법인 아로와나허브를 설립하고 아로와나테크를 인수했다.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행보였지만, 변수가 생겼다. 김상철 회장의 비자금 조성 의혹이다. 경찰은 아로와나토큰이 애초에 김 회장의 비자금 조성 목적으로 발행된 가상자산이라고 봤다. 한컴위드가 아로와나테크에 지분투자한 2021년 무렵 김 회장이 직접 아로와나토큰으로 비자금 조성을 지시한 녹취록도 확보했다. 경영권 승계에서 배제된 아들 김 씨에게 줄 비자금을 조성하기 위해 사실상 페이퍼컴퍼니인 아로와나테크를 통해 아로와나토큰을 발행한 혐의다. 김 회장은 지난 2010년 한컴을 인수한 뒤 딸 김연수 씨에게 대표직과 지분 일부를 준 바 있다. 김연수 한컴 대표이사는 “남동생에 대한 사법부의 결정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할 뿐”이라며 “한컴은 해당 프로젝트의 성공 또는 실패로 인해 그 어떠한 득도 실도 없다”고 해명했다.
블록체인 사업 사실상 종료 수순…메타버스 자회사 지분 정리
아로와나토큰 비자금 수사가 본격화하면서 한컴그룹의 블록체인 사업은 사실상 정리 수순을 밟고 있다. 한컴그룹은 우선 메타버스 자회사인 한컴프론티스 지분을 대폭 축소했다. 20일 금융감독원 다트에 따르면 한컴 그룹의 한컴프론티스 지분율은 올해 3분기 기준 2.45%에 불과하다. 지난해 말까지 한컴의 이 회사 지분율은 46.52%였다. 한컴은 지난 2021년 메타버스 플랫폼 개발사 프론티스를 사들여 한컴MDS의 연결 자회사 한컴프론티스로 편입했다. 이후 싸이월드제트와 ‘싸이월드 한컴타운’을 운영하고 자체 메타버스 플랫폼 ‘아즈메타’를 출시하는 등 비교적 활발히 메타버스 사업을 전개했으나 뚜렷한 성과를 내진 못했다. 한컴그룹 관계자는 “메타버스 사업은 종료한 것이 맞다”며 “지분도 점차 정리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블록체인 보안 기술에 초점을 맞췄던 한컴위드의 기존 사업도 ‘올스탑’ 상태다. 보안 솔루션 한컴 BSS와 블록체인 플랫폼 한컴 에스렛저 관련 사업 소식은 지난 2020년을 끝으로 자취를 감췄다. 2020년 11월 신한금융그룹 IT 서비스 계열사 신한DS와 한컴 에스렛저 기반의 디지털 자산관리 플랫폼 공동개발에 나섰지만 이후 진행상황에 대해선 들려오는 바가 없다.
이는 한컴 블록체인 프로젝트에 대한 신뢰도가 회복 불능 상태에 빠진 만큼 나머지 블록체인 관련 사업에서도 빠르게 손을 떼는 것이 낫다는 판단으로 보인다. 대신 내년 상반기 출시를 목표로 지능형 문서 작성 도구 ‘한컴 어시스턴트’를 개발하는 등 AI 중심으로 사업 노선을 완전히 틀었다. 한컴그룹은 블록체인 사업 현황에 대해선 알리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한컴그룹 관계자는 “한컴위드 블록체인 사업은 기존과 다른 새로운 방향으로 모색하며 준비 중"이라며 "시장의 상황과 적절한 시기를 보면서 전개할 예정이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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