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여야가 표심을 자극할 사회간접자본(SOC) 확충에 손을 잡았다. 전날까지 치열한 ‘예산 전면전’을 펼쳤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수조 원의 재정이 소요되는 철도 건설 사업의 예비타당성조사를 무력화한 특별 법안을 속전속결로 처리한 것이다. ‘표’만 의식한 여야가 ‘포퓰리즘 야합’ 즉 짬짜미를 밀어붙이며 국가 재정의 고갈을 앞당기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21일 정치권에 따르면 이날 국회 국토교통위 전체회의를 통과한 ‘달빛철도 건설을 위한 특별법안’은 2006년 제1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에서 ‘달빛내륙철도’ 명칭의 추가 검토 사업으로 처음 고안됐다. 광주와 대구를 잇는 약 205㎞ 구간의 철도다. 이 사업은 제3차 철도망 구축계획에 이르기까지 매번 의제에 올랐지만 “경제성이 매우 낮다”는 평가에 막혀 본사업에 포함되지 못했다. 국토교통부가 2021년 3월 발표한 사전타당성 조사에서 달빛철도의 비용·편익(B/C) 수치는 사업 추진 기준인 1.0에 절반도 못 미치는 0.483으로 나타나 사실상 낙제점을 받았다. 그럼에도 달빛철도는 문재인 정부 때인 2021년 국토부 ‘제4차 국가철도망구축계획’에 4수 만에 반영됐다.
이후 주춤했던 사업은 대구시와 광주시가 올해 4월 ‘2038년 대구·광주 아시안게임’ 유치를 명분으로 달빛철도 조기 건설을 위해 ‘예타 면제’를 담은 특별법을 추진하는 내용의 협약을 맺으면서 본격화됐다. 여기에 거대 양당의 텃밭인 영호남 지역구 정치인들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맞물리면서 특별법은 헌정사상 최다인 261명의 국회의원이 공동 발의에 동참했다.
당초 6조 429억 원으로 추산됐던 사업비는 ‘일반·단선’에서 ‘고속·복선’ 철도로 방향을 틀면서 11조 2999억 원으로 5조 원 이상 불어났다. 이에 소요예산 급증에 포퓰리즘 논란과 함께 특별법이 통과될 시 철도 건설 사업에서 지역 사업 챙기기용 ‘예타 완화법’이 남발될 수 있다는 지적이 일자 기획재정부·국토부 등 관계 부처는 법안 추진에 제동을 걸었다. 다만 대안으로 시급성이 인정되는 사업의 예타 기간을 최장 2년에서 6~9개월로 단축시킬 수 있도록 하는 ‘신속 예타’를 제시했다. ‘신속 예타’를 진행하더라도 철도 사업의 경우 최대 9개월의 기간을 소요하는 터라 현행 특별법과 착공 시점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게 정부 측의 입장이다.
일부 의원들도 정부 의견에 동조하는 듯했다. 이달 5일과 19일 열린 심사소위에서는 격론이 오간 끝에 법 통과가 미뤄지며 기류 변화가 감지됐지만 여야는 이날 담합으로 ‘예타 면제’를 관철시켰다. 다행히 법안 논의 과정에서 ‘복선의 고속철도’ 내용은 제외됐지만 여전히 총 사업비는 무시 못할 수준이다. 정치권에서도 지역 사업에 대한 ‘예타 면제’를 담은 법안들이 우후죽순 쏟아질 시 심각한 예산 낭비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공공투자관리센터 정책연구실장 출신으로 예타 업무를 담당했던 유경준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국토위 전체회의에서 “예타제도는 대규모 재정 사업의 타당성에 대한 객관적인 조사 결과를 제시해 무분별한 사업 추진을 방지하고자 도입됐다”며 “하지만 현재 달빛철도 특별법을 포함해 약 30개가 넘는 법안에 예타 면제 조항이 포함되며 예타제도가 유명무실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토위 소속인 같은 당 엄태영 의원 역시 “문재인 정부 때 각 시도마다 예타 면제를 해줬다”며 “예타 면제를 기준도 없이 정치적으로 하다 보니 늘 논란이 됐다. 나쁜 선례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예타 면제보다 신속 예타를 통해 오명 없이 당당하게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고 재고를 촉구했다.
전문가들은 인구구조의 급격한 변화와 지역 소멸 등 변수가 많은 만큼 철도망에 대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존 추산보다도 경제성이 더 떨어질 수 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경수 성균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달빛철도 특별법은 2030년 개통이 목표로 그때쯤이면 인구 규모나 분포, 정부의 경제종합계획이 지금과 다를 수 있다”며 “우리 재정이나 나라 살림을 봤을 때는 단순히 의원들끼리 무슨 의기투합하듯이 밀어붙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꼬집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문제는 단순히 철도망 구축이 아니라 물류 운송이라든지 경제 고도화에 따른 여러 변화가 있을 것”이라며 “막상 개통을 해도 이용률 감소, 손실 등 운영이 제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 대한 심도 있는 검토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예타 조사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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