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 새 전자·통신·자동차 등 주요 국내 대기업이 앞다퉈 인공지능(AI) 연구개발(R&D)에 팔을 걷고 나섰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넓은 인력 풀과 방대한 투자를 통해 이미 생성형 AI 상용화 단계에 도달한 해외 업체들에 비하면 걸음마 수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한발 늦은 국내 업체들이 실기하지 않고 AI 시대에 생존하려면 대규모 투자를 비롯한 오너의 결단과 특화된 투자 전략이 다시 필요하다고도 입을 모았다. 승자 독식의 구조인 AI 시대, 긴 호흡의 막대한 투자를 위해서는 오너 경영이 다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조동근 명지대 경영학과 교수는 16일 “AI 같이 거대한 신규 시장에 빠르게 진입하려면 총수 차원의 투자밖에 답이 없다”고 강조했다. 과거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던 것과 유사하게 천문학적 자금이 투입돼야 초기 기술 개발이 가능한 만큼 오너의 결단 없이는 AI 시대에 생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조 교수는 “이러한 투자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사법·규제 리스크 혁파는 물론 투자 세액공제 확대 등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했다. 최근 생성형 AI 시장에 도전장을 내민 국가와 기업들의 행보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일례로 ‘유럽 AI의 희망’으로 불리며 주목 받은 프랑스의 AI 스타트업 미스트랄은 프랑스 정부로부터 대규모 데이터 이용을 적극적으로 지원 받고 있다. 이러한 지원을 기반 삼아 이 회사는 창업한 지 7개월 만에 기업가치가 20억 달러까지 치솟았다.
반면 우리나라 기업들은 상대적으로 속도전에서 밀린다는 분석이 나온다. 가령 지난해 8월 네이버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상용화된 대규모언어모델(LLM) 하이퍼클로바 X를 내놓았지만 해외시장 진출이나 사용자 수 면에서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경전 경희대 경영학·빅데이터응용학과 교수는 “초거대 AI 경쟁에 나선 네이버와 LG 등 국내 기업들의 경우 글로벌 업체와 비교할 때 성능이 아직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삼성전자가 최근 들어 온디바이스 AI를 강조하고 나섰지만 운영체제(OS) 측면에서는 안드로이드에 종속된 상태”라고 진단했다.
전문가들은 기업들의 전략적인 투자가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시기라고 분석했다. 한발 늦기는 했지만 이미 궤도에 오른 하드웨어·정보기술(IT) 개발 능력을 바탕으로 한국이 잘할 수 있는 분야를 개척해나간다면 승산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생성형 AI를 기반으로 나올 서비스 수요를 예측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고 이를 선점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봤다.
이 교수는 “예를 들어 스마트폰이라는 새로운 기술이 등장했을 때 카카오·쿠팡 등의 서비스 산업이 파생됐다”며 “AI 관련 서비스를 개발해 선점한 뒤 그 안에 있는 엔진은 국산화하거나 저렴하게 소싱하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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