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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가상과 현실 융합…'SF속 신세계'를 열다

◆공간컴퓨팅 시대 개막

-애플의 야심작 '비전 프로'

헤드셋 착용하면 허공에 앱 떠올라

최대 10개 동시에 띄워 작업 가능

영화볼땐 현장에 있는듯한 착각도

-에브리사이트 '스마트 글라스'

자전거 탈때 눈앞에 내비 틀어주고

카톡·메일 전송에 통·번역도 '척척'

공장·자동차 등 다분야 활용 기대

애플 비전프로를 착용한 사용자가 영화를 보면서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 사진 제공=애플




2002년 개봉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공상과학(SF)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보면 주인공 톰 크루즈가 2054년 워싱턴DC에서 손을 움직여 허공의 가상 컴퓨터를 작동하며 원하는 자료를 보는 모습이 나온다. 미래 범죄 예측 시스템으로 범죄 예방 역할을 하는 그는 오히려 자신이 36시간 뒤 살인을 저지를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자 억울한 진실을 파헤친다.

2일 미국에서 출시된 애플의 혼합현실(MR) 헤드셋인 ‘비전 프로’도 마이너리티 리포트처럼 공간 컴퓨팅(spatial computing)의 세계를 열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사용자가 헤드셋을 쓰면 허공에서 손가락과 시선을 통해 앱을 제어할 수 있다. 챗GPT 개발사인 오픈AI의 최고경영자(CEO) 샘 올트먼은 “아이폰 이후 두 번째로 인상적인 기술”이라고 평가했다. 공간 컴퓨팅은 증강현실(AR)·가상현실(VR)·확장현실(XR) 같은 MR을 통한 메타버스 기술이나 특정 공간과 사물을 가상공간에 구현해 훈련하는 디지털 트윈이 뒷받침된 기술이다.

메타버스가 아직은 신기루라는 일부 평가가 무색하게 비전 프로의 성능은 인상적이다. 집 안 거실에서 비전 프로를 쓰면 사물은 그대로 있는데 허공에는 e메일·메시지·사진·음악 등의 앱이 떠 있다. 책상에 앉아 음악과 메일 앱을 열어 놓고 다른 문서 작업을 할 수도 있다. 동영상을 시청하며 문서 작성을 하는 식이다. 미 프로농구(NBA)를 시청할 때 가장 보고 싶은 경기는 가운데 놓고 다른 경기는 양쪽에 둘 수 있다. 비전 프로는 최대 10개의 화면을 동시에 띄울 수 있다. 국내 기업의 뉴욕 주재원인 A 씨는 “비전 프로로 영화를 보니 때로는 내가 영화 장면 안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고 소감을 피력했다.

SF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 포스터.


팀 쿡 애플 CEO는 “손 추적과 공간 매핑 등 모든 것이 인공지능(AI)으로 가동된다”며 “매킨토시가 개인용 컴퓨팅 시대, 아이폰이 모바일 컴퓨팅 시대를 열었듯 공간 컴퓨팅 시대를 열 것”이라고 의지를 보였다. 물론 구글이 2013년 스마트 글라스(안경) 시장에 도전한 적이 있고, 메타의 VR 헤드셋인 ‘오큘러스’와 ‘퀘스트3’가 상용화됐지만 애플이 본격적으로 공간 컴퓨팅 혁명을 끌어내겠다는 것이다. 앞서 애플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는 노키아, 블랙베리, 삼성의 스마트폰이 있던 2007년 컴퓨터, 전화, 음악 휴대용 저장 장치를 합치고 터치스크린을 적용한 아이폰을 발표해 화제를 모았다. 특히 스마트폰에 다양한 장터를 연 앱 스토어 생태계를 구축해 스마트폰 시대를 열었다.

실내에서 애플 비전프로를 쓴 모습. /사진제공=애플


다만 비전 프로는 아직은 실내용인 데다 크고 무게도 600g이나 되며 배터리 수명은 2시간밖에 안 된다. 그만큼 머리가 아플 수도 있다. 관련 앱을 만들기까지 어려움도 따라 콘텐츠도 제한적이다. 경쟁사인 구글의 유튜브나 넷플릭스, 메타의 페이스북 등은 “비전프로 앱을 만들지 않겠다”고 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구글과 MR 생태계를 같이 구축하겠다고 했다.

2015년 처음 출시된 마이크로소프트(MS)의 MR 기반 기기 헤드셋인 홀로렌즈도 공간 컴퓨팅을 내세운다. 윈도 PC 기능을 내장한 이 헤드셋은 제너럴일렉트릭(GE)·벤츠·BMW 등에서 생산성 향상 및 교육용으로 쓰고 있고 미군에서도 병사의 위치 데이터 시각화와 건강 데이터 수집용 등으로 일부 사용한다. 중국 화웨이도 연내 자체 반도체를 사용한 비전 헤드셋을 내놓을 계획이다. 앞서 화웨이는 2019년 스마트 안경과 TV를 출시했다.



관람객들이 에브리사이트 전시장에서 AR 글라스를 쓰고 있다. /사진제공=윌 그린월드


이와 함께 지난달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전자·정보기술(IT) 전시회 ‘CES 2024’에서는 AR을 활용한 공간 컴퓨팅의 일종인 혁신 스마트 안경이 대거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사용자가 소리로 지시하거나 스마트폰을 조작해 스마트폰의 여러 기능을 안경에서 펼쳐 보이게 한다. 블루투스를 통해 안경을 스마트폰과 연결한 뒤 다양한 센서 등을 활용한 결과다. 에브리사이트 매버릭, 엑스리얼 에어 2 울트라, 레이네오 X2 라이트, 마인드링크 에어, 스페이스톱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에브리사이트 스마트 글라스를 쓴 모습. /사진제공=에브리사이트


이 중 이스라엘의 F16 조종사 출신인 아사프 아슈케나지가 조종사 헬멧 비전 기술로 창업한 에브리사이트는 오토바이나 사이클(자전거)을 타거나 달릴 때 안경을 통해 눈앞에 내비게이션을 비춰준다. 목적지를 가리키는 화살표만 보여주기도 한다. 여행 중 목적지를 찾을 때 3D로도 건물을 보여준다. 이동 중 심장박동 등 신체 정보도 알 수 있고 카톡이나 e메일을 확인하고 목소리로 답장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오토바이와 자전거를 탄 채 휴대폰을 조작하다가 일으키는 사고를 방지할 수 있다.

챗GPT를 안경에서 구현해 강의하거나 발표할 때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외국인과 대화할 때 프롬프터처럼 자국말 번역본도 뜬다. 안경의 무게는 47g에 불과하고 한 번 충전하면 최대 8시간 이상 쓸 수 있다. 2017년 선보여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AR 게임인 ‘포켓몬 GO’ 같은 게임을 아무 곳에서나 할 수 있다. 아슈케나지 CEO는 “가볍고 멋진 디자인으로 AR 안경 대중화에 나서겠다”며 “실내외에서 투시력이 높고, 근시·난시 교정 렌즈도 넣을 수 있고, 선글라스처럼 사용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스포츠용뿐 아니라 스마트 공장, 자동차 등에 널리 활용될 것”이라며 “올해 나온 삼성 갤럭시 AI 폰과 연결하면 시너지 효과가 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 회사는 이미 BMW에 사이클용 AR 글라스를 납품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공간 컴퓨팅이 헤드셋이나 안경을 넘어 자동차 등으로 확장할 것으로 내다본다. 디지털 중독 심화를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미국 정보통신기술(ICT) 전문가인 캐시 해클은 “앞으로 시계와 자동차까지 모든 인터페이스가 공간 컴퓨팅 장치로 변모할 것”이라고 했다. 이승환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은 “컴퓨팅 패러다임이 PC·모바일을 넘어 공간으로 진화하며 메타버스를 구현하는 기반을 제공할 것”이라며 새로운 디지털 공간 경제, 공간 컴퓨팅과 AI 융합 가속화, 공간 컴퓨팅 경험 확대, 복합 경쟁을 키워드로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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