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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w&Insight]“채권은 찍지만 빚은 아니다”…국토부의 해괴한 논리

'50조' 철도 지하화 재원

조달방식 '민간→공공' 변경

LH 등 공사채 발행으로 조달

정부 "빚내서 조달하는 것 아냐"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달 2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 토론회'에서 보고된 교통 분야 관련 주요 정책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현실성이 낮다.”

정부가 지난달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한 민생 토론회에서 ‘철도 지하화’ 카드를 꺼냈을 때 업계 안팎에서 잇달아 제기된 지적이다. 국토교통부가 50조 원으로 추산된 철도 지하화 재원을 모두 민간에서 조달하겠다는 계획을 함께 내놨기 때문이다. 민간 사업자가 지하화 사업을 진행한 후 상부 개발이익으로 투자비를 회수하게 해주겠다는 구상이다. 전례 없는 규모의 토목 공사에 정부 재정을 투입하지 않는 것이 핵심이다.

단 업계에서는 수십 년이 걸릴 공사에 막대한 자금을 묻어둘 민간 자본을 찾기 어려울 것이라는 회의론이 지배적이었다. 이번에 발표한 철도 지하화 계획도 결국 정치권이 선거철마다 남발하는 공수표에 불과하다는 시각도 제기됐다. 실제 철도 지하화는 첫 동시 지방선거가 이뤄진 1995년부터 최근 30년간 선거 때마다 나온 단골 공약이다.

현실성 논란이 커지자 국토부는 말을 바꿨다. 철도 지하화 재원을 민간이 아닌 공공에서 조달하겠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국토부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한국철도공사(코레일) 등 정부출자기관이나 특수목적법인(SPC)에서 ‘철도지하화통합개발채권’을 발행해 50조 원 규모의 재원을 마련할 계획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전체적인 사업구조가 바뀐 것은 아니다”라며 “LH 등의 공사채를 민간에서 사들인다는 점을 고려해 지하화 재원을 민간 조달 방식으로 발표했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공사채로 재원을 조달하는 사업 구조에는 변함이 없지만 이를 민간 조달과 공공 조달 중 어떤 것으로 볼 지에 대한 해석만 달라졌다는 설명이다.





이번에는 공기업 부채가 급증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자 국토부는 지난 19일 설명자료를 내고 부랴부랴 진화에 나섰다. 국토부는 공사채 등을 통해 민간에서 조달한 재원으로 지하화를 진행하는 만큼 결론적으로 사업에 투입되는 정부 재원은 ‘제로(0)’라고 했다. 국토부는 설명자료에서 “철도 지하화 사업자금 50조 원을 빚내서 조달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거듭 밝혔다.

하지만 채권이 부채라는 사실은 회계학의 기본 원칙이다. 공사채를 찍어도 빚을 내는 것이 아니라는 설명은 사실상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다’라는 해명과 다르지 않다. 국토부 논리대로면 2022년 기준 1600조 원에 육박한 공공부문 부채(D3)도 문제될 것이 없다. 국가채무(D1)는 물론 넓은 의미의 나랏빚으로 분류되는 공공부문 부채를 줄이는 것은 윤석열 정부 건전재정 기조의 핵심 중 하나다.

결국 정부의 철도 지하화 구상은 발을 떼기도 전에 시장 혼란만 키웠다. 대통령 주재 토론회에서 ‘민자 유치’로 발표된 재원 조달 방식이 불과 몇 주 만에 180도 뒤집힌 것 자체가 정책의 설익음을 보여준다는 지적도 있다. 50조 원 규모의 초대형 사업을 제대로 추진하려면 적어도 이런 해프닝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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