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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틋함'을 영화로 만든다면 '패스트 라이브즈' [정지은의 리뷰+]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 리뷰

오스카 및 해외 유수 시상식 노미네이트

셀린 송 감독의 자전적인 경험 바탕

배우들의 연기력이 만들어낸 관계들의 아름다움

'패스트 라이브즈' 스틸 /사진=CJ ENM




"네 남편이 좋은 게 이렇게 아플 줄 몰랐어."

'애틋함'이라는 감정을 영화로 만든다면 이런 작품일까. 모든 순간이 가슴 저린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는 서로의 첫사랑이었던 두 남녀가 24년이 지나고 뉴욕에서 재회하게 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아내며 동시에 인(因)과 연(緣)이 가지는 '인연'의 힘에 대해 조명한다.

'패스트 라이브즈' 스틸 /사진=CJ ENM


◇韓계 신화 다시 쓴 '패라'...오스카 레이스 완주할까 = '패스트 라이브즈'는 오는 3월 10일(현지시간) 미국 LA 돌비 극장에서 열릴 예정인 제96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과 각본상 후보에 올랐다. 이전에도 골든글로브 시상식,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등을 비롯한 해외의 저명한 시상식에서 후보에 올랐으며 미국 감독 조합상, 런던 비평가 협회상, 전미 비평가 협회상 등에서 수상을 거머쥐며 '오스카 레이스'를 완주할 수 있을지 기대를 모았다.

'패스트 라이브즈'는 한국계 캐나다인 감독인 셀린 송이 연출하고 유태오가 주연을 맡았다는 점으로 또 다른 한국계 감독 이성진의 작품인 '성난 사람들'과 함께 주목을 받았다. 두 작품 모두 탁월한 안목으로 유명한 제작사 A24의 작품으로 '기생충' 이후 이렇게 성공한 한국 콘텐츠들이 없었기에 더욱 화제의 중심에 오르기도 했다. '성난 사람들'의 경우 골든글로브를 비롯해 미국배우조합상, 에미상 등 끊임없는 수상 소식을 알리며 국내 팬들에게도 환호를 받았기에 비등한 작품성을 갖춘 '패스트 라이브즈' 또한 영화 시상식에서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길 바라는 관심이 모이고 있다.

'패스트 라이브즈' 스틸 /사진=CJ ENM




◇셀린 송 자전적인 경험에서 나온 장면들 = '패스트 라이브즈'가 주목받았던 또 다른 이유에는 셀린 송이 '넘버 3'를 연출한 송능한 감독의 딸이라는 점도 있었다. 셀린 송의 자전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한 '패스트 라이브즈'인 만큼 작품 속에는 아버지의 기척을 느낄 수 있는 흔적들이 다수 등장한다. 예를 들어, 나영의 아버지 직업은 영화감독으로 나오고 해성이 나영을 찾는 과정 또한 아버지의 영화 SNS 페이지에 나영을 찾는 글을 올리는 것부터 시작된다.

더불어 이민자였던 셀린 송의 어린 시절을 담은 모습 또한 포착된다. 어릴 적 부모님을 따라 12살에 캐나다로 이민을 간 그처럼 작품 속 나영 또한 갑작스럽게 한국 이름을 영어 이름으로 바꾸고 부모님을 따라나선다. 시끌벅적했던 한국의 초등학교와 달리 이민자의 입장으로 조용한 학교생활을 보내는 모습에서는 왠지 모를 고독이 느껴진다. 또한 노라가 된 나영은 글을 쓰는 일에 흥미를 가지며 커리어를 유지하는데, 이 또한 영화계에 몸담기 전 극작가로 일했던 셀린 송의 실제 인생과 닮아있다.

'패스트 라이브즈' 스틸 /사진=CJ ENM


◇모두가 주인공인 '패스트 라이브즈' = '패스트 라이브즈'는 바에 앉아있는 나영(그레타 리)과 노라의 남편 아서(존 마가로), 그리고 해성(유태오), 이 세 사람을 보며 누군가가 그들의 관계를 유추하는 대화 장면으로부터 시작된다. 언뜻 보아도 누구에게나 잔잔한 흥미를 유발하는 세 사람의 관계는 105분의 러닝타임 동안 점진적으로 그려지되 끝에서는 폭발하는 클라이맥스를 선사한다.

'패스트 라이브즈'의 묘미는 누구나 주인공이라는 점이다. 한 커플을 주인공으로 몰아 삼각관계의 틀에 집어넣고 커플을 방해하는 이를 빌런으로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나영과 아서, 나영과 해성, 그리고 아서와 해성까지의 '인연'까지 집중하며 그들이 어떻게 뉴욕에서 만나게 됐고 그 사이에는 어떠한 감정들이 떠돌아다니는지 섬세한 시선으로 포착한다. 24년 만에 만난 첫사랑을 향한 나영과 해성의 요동치는 마음, 그리고 이 상황에서 미묘한 감정을 느끼는 남편의 마음은 배우들의 명연기로 인해 더욱 살뜰히 빛난다.

그리고 클라이맥스에서 폭발하듯 선사되는 엔딩 신까지, 가슴 아린 대사와 눈빛이 그들의 먹먹한 관계를 증명한다. "내가 이해하지 못할 말로 꿈을 꾸는 것"에 대해 슬퍼하는 아서, "네 남편이 좋은 게 이렇게 아플 줄 몰랐다"는 해성, 그리고 "여기가 내 종착지고, 여기가 내가 있어야 할 곳"이라는 나영의 말까지. 하지만 그 시리고 시린 말 속에서도 이별을 성장의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세 사람의 모습이 인상 깊다. 더불어 이 모습을 바라보는 관객들 또한 다음 생 어디에선가, 누군가로 만난 그들이 "와, 너다!"라고 외치며 웃을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을 심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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