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기업 밸류업 지원책 마련을 공식화한 후 코스피 기업들의 자사주 소각이 크게 증가한 반면 코스닥 기업은 여전히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개발(R&D) 등 초기 투자 비용이 크게 드는 중소 벤처기업 특성상 자금 여력이 부족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3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1월 24일부터 지난달 29일까지 코스피 상장기업의 자사주 소각 공시는 총 26건으로 전년 동기(10건) 대비 2배 이상 늘었다. 같은 기간 자사주 소각 규모도 약 1조 1646억 원에서 3조 5204억 원으로 증가했다. 반면 코스닥 기업의 자사주 소각은 7건에서 8건으로 겨우 1건 늘어나는 데 그쳤다. 자사주 소각 규모 역시 약 507억 원에서 585억 원으로 소폭 증가했다.
1월 24일은 금융위원회가 밸류업 정책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한 날이다. 기업당 평균 자사주 소각 규모 역시 코스피 기업이 1354억 원으로 코스닥(73억 원) 대비 19배나 차이가 났다.
자사주 소각은 기업이 보유했던 자기 주식을 이익잉여금으로 사들인 뒤 이를 없애는 것을 말한다. 발행주식 수가 줄어들어 주당순이익(EPS)과 주당순자산(BPS)이 상승하는 효과가 있다. 소극적인 주주 환원과 낮은 자본 수익률 문제를 동시에 해결해줄 수 있어 가장 대표적인 기업 밸류업 정책 중 하나로 꼽힌다.
전문가들은 코스닥 기업의 자사주 소각이 저조한 이유로 부족한 자금 여력을 꼽았다. 권재열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바이오나 벤처기업은 초기 투자 비용이 막대하게 들 때가 많은데 이들에게도 지나친 주주 환원을 강요하면 역효과가 날 수 있다”고 진단했다.
반면 코스피 기업의 경우 SK이노베이션·삼성물산(028260) 등 자금 여력이 충분한 대기업을 중심으로 자사주 소각이 활발히 이뤄졌다. 이준서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주주 환원은 기업의 성장 단계에 따라 차등화될 수밖에 없다”며 “재투자에 쓰여야 할 돈이 묶여 있거나 잉여금이 경영진의 사적 이익에 쓰이는 걸 막자는 게 주주 환원의 대전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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