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톡’ 운영사 로앤컴퍼니와 국내 인공지능(AI) 전문 기업 업스테이지가 법률 특화 거대언어모델(LLM) ‘솔라 리걸’을 공동 개발하기로 했다. 글로벌 리걸테크(법률 기술) 렉시스넥시스 국내 진출이 임박한 상황에서 각각 국내 법률 데이터와 한국어 인지·추론에 강점을 가지고 있는 두 기업이 손잡고 대응에 나서는 것이다. 국내 기업 간 AI 협력은 행정, 보안, 교육 등 다방면에서 이뤄지고 있다. 주요국 간 AI 개발 경쟁이 속도전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개발 및 서비스 주체들간 합종연횡을 통해 글로벌 빅테크 공세에 공동 대응하는 흐름이 거세지고 있다.
로앤컴퍼니는 “AI 전문기업 업스테이지와 한국 법률 특화 LLM 솔라 리걸 공동 개발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고 12일 밝혔다. 두 기업은 법률 AI 연구와 LLM 개발 등 각자의 분야에서 축적한 기술 역량과 인프라, 노하우를 합쳐 오픈AI GPT-4 모델 성능을 능가하는 모델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로앤컴퍼니는 2019년 조직 내에 ‘AI법률연구소’를 만들어 법률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슈퍼로이어’를 개발해왔다. 업스테이지는 해외 빅테크가 만든 LLM을 미세 조정(파인 튜닝) 하는 수준을 벗어나 자체 LLM ‘솔라’를 개발하는 성과를 냈다.
솔라 리걸 개발을 위해 로앤컴퍼니는 약 443만 건의 판례 데이터와 16만 건의 법령·결정례·유권해석 데이터를 제공한다. 또 슈퍼로이어 개발 과정에서 축적한 법률 데이터 학습 노하우를 공유할 계획이다. 업스테이지는 솔라 리걸 개발 속도를 높이고 모델을 정교화하는 역할을 맡는다. 홍콩과기대 교수 출신 김성훈 대표가 2020년 설립한 업스테이지는 광학문자인식(OCR) 분야에서 초기 두각을 나타낸 이후 광범위한 AI 모델 개발 경험을 쌓아 각종 국제 AI 성능 평가 대회에서 1위를 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최근 국가 간 AI 개발 경쟁은 속도전 양상을 띠고 있다. 2022년 11월 오픈AI가 ‘챗GPT’를 본격 출시한 지 불과 1년 반 정도 흐른 가운데 각 산업 분야를 이끄는 기업은 이미 자체적으로 AI 모델을 만들어 서비스 고도화를 이뤘다. 리걸테크 분야 글로벌 선두 기업 렉시스넥시스는 각국 법률 데이터와 언어를 학습시켜 법률 해설, 판례·논문 검색, 법률 콘텐츠 생성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델을 만들어냈다. 미국 프롭테크(부동산 기술) 1위 질로우 또한 부동산 전용 AI 모델을 만들었고 동남아 모빌리티 1위 그랩은 AI 기술로 교통 문제를 해결한다. 세계 에듀테크(교육 기술) 1위 바이주도 일찍이 AI 모델 개발을 완료했다.
글로벌 테크 기업의 국내 시장 침투 가능성이 커지면서 국내 기업 간 합종연횡 흐름은 가속화하는 양상이다. NHN클라우드과 네이버클라우드는 올 2월 양해각서(MOU) 체결을 통해 네이버가 개발한 ‘하이퍼클로바X’를 기반으로 공공·교육 분야 LLM을 공동 개발하기로 했다. 네이버와 한국은행은 한국은행이 보유한 자료를 검색·요약·추천해주는 AI 모델을 함께 개발하는 데 합의했고 샌즈랩·포티투마루·LG유플러스는 보안 문제를 해결하는 AI 개발에 나섰다. 모두 외국 기업에 전적으로 의존하기에는 ‘기술 주권’ 이슈가 발생할 수 있는 분야들이다.
여기에 글로벌 테크 기업의 위협으로 속도전이 중요해지면서 업스테이지와 같은 AI 전문 기업과 손잡고 AI 모델 공동 개발에 나서는 사례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업스테이지는 지난해 말 국내 기반 글로벌 에듀테크 ‘콴다’ 운영사 매스프레소 및 KT와 손잡고 수학 특화 LLM ‘매스GPT'를 공동 개발한 적이 있다. 매스프레소는 당시 이미 상당한 AI 개발 역량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세계를 무대로 경쟁하는 에듀테크 기업들의 AI 서비스 개발 속도가 빨라지는 것을 고려해 업스테이지와 협업하고 개발을 서둘러 끝내는 방안을 택했다. 매스GPT는 올 초 성공리에 개발을 마쳤다.
안기순 로앤컴퍼니 AI법률연구소장은 “글로벌 리걸테크의 국내 진입이 가시화된 상황에서 경쟁력 있는 국내 AI 기업과 손잡고 개발 속도와 완결성을 높이는 것이 중요했다”며 “로앤컴퍼니는 국내 법률 데이터에, 업스테이지는 한국어 처리 능력에 강점이 있어 둘이 시너지 효과를 낸다면 충분히 국내 시장을 사수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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