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 시계는 대부분 수작업으로 제작된다. 부품 하나까지 모두 장인이 직접 조립하기 때문에 ‘와치 메이킹(watch making)’은 그 자체로 예술의 일부다. 지난 2016년 전세계 시계 애호가들을 떠들썩하게 할 만한 소식이 전해졌다. 세계적인 시계 브랜드 리차드 밀이 시릴콩고(Cyril Kongo)와 협업한다는 뉴스였다.
시릴 콩고는 당대 최고의 그래피티 아티스트 시릴 판의 애칭이다. 그는 리차드밀의 시계를 캔버스 삼아 그래피티 아트를 초소형 정밀 기계에 구현했다. ‘RM 68-01 투르비용 시릴 콩고’라는 이름으로 공개된 시계는 ‘와치 메이킹’의 새 역사를 썼다. 상류층만 누릴 수 있었던 시계 예술이 거리의 예술과 손 잡고 ‘손목 위의 예술 작품’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거리의 예술로만 알려진 그래피티를 ‘미술의 한 장르’로 격상 시킨 예술가 시릴 콩고의 작품 45점이 한국에 상륙했다. 뮤지엄 웨이브는 세계적인 그래피티 아티스트 시릴콩고의 개인전 ‘그래피티의 연금술사, 시릴 콩고’를 14일부터 6월 1일까지 서울 성북동 뮤지엄 웨이브에서 개최한다고 밝혔다.
그래피티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작가는 제도권 교육을 받지 않고 독학으로 자신만의 작품 언어를 확장해 왔다. 프랑스인 어머니와 베트남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작가는 프랑스 파리, 홍콩, 멕시코 과달루페 등 다양한 곳에서 활동했다. “거리는 나의 학교”라 말하며 수많은 작품을 거리에 구현한 작가는 에르메스, 리차드 밀, 샤넬, 마세라티 등 세계 정상급 럭셔리 브랜드와 협업하면서 그래피티를 주류 예술계로 편입시켰다.
이번 전시는 시릴 콩고의 한국 첫 개인전으로 초기 아카이브부터 최근작까지 수십 년에 걸친 작가의 그래피티 여정을 망라하는 작품을 볼 수 있다. 전시는 뮤지엄웨이브의 총 3개 층에서 이뤄진다. 1층에서는 작가의 전기적 삶과 예술 세계를 둘러볼 수 있다. 벽면을 장식한 거대한 그래피티 작품 속에는 작가가 직접 여행한 도시의 이름이 그래피티 방식으로 새겨져 있다.
작가는 주로 알파벳을 통해 작품의 밑단을 구성하고 이후 형형색색의 스프레이 물감을 덧입힌다. 그래피티는 완성이 없다. 계속해서 영감이 떠오를 때마다 스프레이로 작품을 다시 제작한다. 지난 12일 전시장에서 기자와 만난 작가는 작품 속에 숨겨진 도시 이름을 손으로 직접 찾아주며 “이곳에 곧 ‘서울’이 추가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3층이다. 3층 섹션의 이름은 ‘슈퍼스타 오브 럭셔리 콜라보래이션’. 작가는 2011년 에르메스와 협업한 실크 스크린 스카프를 세상에 선보였고, 2016년 세계적인 브랜드 리차드 밀, 크리스털 매뉴팩처 다움, 2018년 샤넬 공방 컬렉션 등 다양한 럭셔리 브랜드에 그래피티 예술을 녹여냈다. 에르메스 실크 스카프 뿐 아니라 샤넬의 수석 디자이너였던 칼 라거펠트의 사망 전 마지막 원피스 작품 2점도 국내 최초로 전시된다. 시릴 콩고는 “컬렉션이 2018년 12월에 진행됐고 칼 라거펠트가 3개월 후인 2월에 사망했다”며 “협업 테마는 고대 이집트로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내 이집트 신전에서 진행된 컬렉션을 위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작가는 한국 전시 이후 자동차 기업 롤스로이스 등 다양한 브랜드와 글로벌 프로젝트를 진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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