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인간과 자연은 공존할 수 있는가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정지은의 리뷰+]

아카데미가 주목한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신작

인간과 자연의 공존에 관한 딜레마 다뤄

제80회 베니스국제영화제 심사위원대상 수상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스틸 /사진=그린나래미디어




악은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것일까. 자연과 인간의 공존이라는, 선뜻 어떠한 방법이 옳다고 말할 수 없는 딜레마를 소재로 보는 이들로 하여금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만드는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영화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가 극장을 찾아왔다.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스틸 /사진=그린나래미디어


◇'하마구치 류스케 표' 이야기와 완만한 호흡의 앙상블 =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이야기는 항상 관객들의 마음에 느리고 잔잔하게 스며든다. 전작 '우연과 상상', '드라이브 마이 카' 등에서 인물과 그들 간에 이뤄지는 대화를 중심으로 작품을 이끌어온 하마구치 류스케는 이번 작품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에서도 완만하게 이야기를 전개한다. 이야기는 작은 산골마을에서 열린 글램핑장 설명회에서 일어난 일을 바탕으로 흘러간다.

작품은 딸 하나(니시카와 료)를 키우며 사는 타쿠미(오미카 히토시)가 목재를 베고 장작을 마련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된다. 자연의 고즈넉함이 느껴지는 고요한 설산을 배경으로 계곡에서 물을 긷고 땅 와사비를 발견하고 입에 넣어 맛보는 타쿠미의 일상이 흐른다. 주민들의 따뜻한 식사와 정겨운 대화도 이어진다.

하지만 이 평화는 글램핑장을 세우려는 회사로 인해 균열이 생긴다. 글램핑장 조성 담당자인 타카하시(코사카 류지)와 마유즈미(시부타니 아야카)는 설명회를 진행하지만 주민들은 납득하지 못하고, 사이의 마찰을 느낀 두 인물은 요동치는 내면의 변화를 느낀다.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스틸 /사진=그린나래미디어




◇자연과 인간의 공존이 주는 딜레마 =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과 자연 속에서 휴가를 보내고자 하는 사람들의 대립은 관객들에게 깊은 질문을 던진다. 글램핑이란 기존의 캠핑보다 더 나은 조건의 시설에서 자연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 아웃도어 활동을 뜻한다. 이에 글램핑 시설 설립을 위해 주민과 소통한 기록을 남기고자 주민설명회를 의무적으로 개최한 타카하시와 마유즈미는 자신들의 기대와 달리 논리정연한 주민들의 반박을 온몸으로 마주하게 된다.

오랫동안 자연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글램핑 시설 내 모닥불로 인한 대형 화재 사고의 위험, 정화조의 위치로 인한 오물 배출에 대한 우려, 야간 수당 지급을 피하기 위한 관리인의 부재 등을 짚어내며 글램핑에 대한 회의적인 태도를 드러낸다. 이로 인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두 인물의 감정적인 변화가 부각되는 신, 그리고 두 인물의 보고에도 주민들의 의견에 대해 궤변을 늘어놓고 자신만의 입장을 피력하는 사장의 모습은 우리 사회가 직면한 환경 문제에 대해서도 되돌아보게 만든다.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스틸 /사진=그린나래미디어


◇모호한 선과 악의 경계에 선 인물들 =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작품에는 선과 악이 뚜렷한 인물들이 등장하지 않는다. 이번 작품 또한 자연이 소재지만 그 중심을 둘러싼 인물들은 모두 선과 악의 경계 위에 나란히 서 있다. 자연을 보호하려는 사람들은 자연의 일부분을 삶의 일부분으로 치환하며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땅 와사비를 자신이 하는 식당의 신메뉴의 재료로, 꿩의 깃털을 건반 악기 쳄발로의 재료로 삼는다. 하지만 이것 또한 자연을 사용하는 입장이며 저마다의 이익을 향한 목표를 품고 있다.

반대의 입장인 것 같았던 글램핑 조성 담당자들도 도시에서 온 냉정한 사람들 같은 겉모습과 달리 사장과 이야기할 땐 주민들을 비호하는 모습도 보인다. 자연스럽게 서로의 연애나 전 직장 등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은 여느 인간과도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이러한 인물들의 관계성이 얽히고 설키는 가운데 작품의 후반부는 다소 당혹스러운 파국으로 치닫는다.

타쿠미의 딸 하나가 돌연 실종되며 주민들은 분주하게 하나의 행방을 쫓는다. 이 엔딩은 다양한 해석을 낳는데 작품의 중반부에서 나온 타쿠미의 주장, 동물원의 사슴은 사람을 해쳐도 야생 사슴은 사람을 해치지 않으며 만약 해친다 해도 총에 빗맞았거나 상처를 입은 사슴의 부모인 경우라는 입장과 연결돼 보인다. 사슴으로 상징화된 자연이 인간이 건드리지 않는 이상 자연이 인간을 해칠 수는 없다는 메시지를 전하려는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노력 같기도 하다.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나 모든 관객들에게 다양한 생각할 거리를 만들어주는 엔딩은 큰 여운을 남긴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