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눌리고, 치이고, 잘리고…행복하지 않은 중간관리자들 [World of Work]  

‘중간관리자’가 꿈이었던 사람은 없다

효율성의 시대에 불행해진 관리자들

중간관리자는 정말 조직의 적인가


직장에서 중간관리자가 행복하기란 원래 어려운 법이다. 업무가 미숙한 후배들을 돌보며 임원급 상사의 수많은 지시 사항을 처리해내는 역할은 누구에게라도 힘겹다. 모호한 역할과 권한 속에서 이리저리 치이는 건 또 어떤가. 이들의 고통은 형제 중 둘째에게 나타난다는 ‘둘째 아이 증후군(Middle Child Syndrome)’과도 비슷하다. 정신분석학 등에 따르면 둘째로 태어난 아이들은 첫째처럼 주목받지도 못했고 막내처럼 사랑받지도 못해 소외감을 느낀 나머지 눈치 보는 아이로 자라는 경향이 높다고 한다. 지배적으로 자란 첫째와 야심 찬 막내와 비교해 협조적이라는 긍정 평가도 있지만 정작 둘째 본인은 “왜 나만 참아야 하느냐”는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과거에는 ‘리더’가 되기 위해 당연히 거치고 버텨야 하는 자리라고 인식하는 경향이 많았다. 하지만 오늘날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후배들은 중간관리자가 되기를 꺼리며 중간관리자의 관리를 받는 일조차 거부한다. 반면 회사 또한 비용과 효율성을 문제 삼으며 중간관리자의 필요성을 매일 되묻는다. 중간관리자는 정말 필요없는 자리인가. 우리는 이렇게 중간관리자의 불행을 무시해도 되는 걸까.

*출처=DALL-E 3




“나만 왜…” 불안하고 불행한 세계의 중간관리자들


세계 최대규모의 직장 평가사이트 글래스도어에 따르면 미국 내 고용주의 향후 6개월 사업 전망 등에 대한 직원들의 신뢰도를 평가하는 직원신뢰지수(ECI)가 지난 2월 45.1%로 내려앉았다. 글래스도어가 해당 조사를 실시한 2016년 이래 가장 낮은 수치다. 지수가 낮다는 것은 직원들이 그만큼 고용주를 신뢰하지 못해 불안과 불만을 느끼는 상황으로 해석된다.



지수는 6개월 전인 지난해 7월까지도 47.6%였지만 점차 하락해 매월 저점을 경신하는 중이다. 그리고 이처럼 지수를 끌어내리고 있는 사람들은 팀·부서 등을 관리하고 있지만 임원은 아닌 중간관리자급 직원들이라는 분석이다. 이들의 회사에 대한 신뢰도는 지난해 2월 54.6%였지만 48.3%로 6.3%포인트 급감했다. 신입·일반사원(48.1%)들과 거의 같은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기업들이 비용과 효율성을 강조하기 시작한 것을 원인으로 보고 있다. 중간관리자는 직접 결과물을 내는 직책이 아니라 관리직이다보니 비용 절감의 최우선 대상으로 이름을 올리기가 쉽다. 한마디로 회사가 중간관리자를 불필요한 사람으로 보는 분위기가 강해진 것이다. 일례로 2023년 미국의 빅테크를 비롯한 주요 대기업에서 대규모 정리해고를 단행했던 가운데 해고의 주된 대상은 대부분 중간관리자였다. 블룸버그의 보도에 따르면 2023년을 ‘효율성의 해’로 선포하며 이런 분위기를 이끈 메타의 마크 저커버그는 전체 직원 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관리자가 관리자를 관리하고, 관리자가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을 관리하는 구조는 원하지 않는다.”

이처럼 ‘효율’을 중시하는 움직임은 업계 전반으로 번졌고, 중간관리자의 실직은 현실화되는 중이다. 블룸버그가 최근 실시한 라이브데이터 기술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직원을 감독하는 비임원’으로 정의되는 중간관리자의 해고가 30%를 웃돌며 전체의 3분의 1을 차지했다. 분위기는 이어져 지난 1월 UPS는 관리자의 일자리 1만 2000개를 줄여 10억 달러 이상을 절감하겠다고 했다. 씨티그룹도 앞으로 몇 년 2만 개의 직책을 없앨 계획을 밝히며 관리 계층을 13개에서 8개로 축소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 핀테크 스타트업을 다니다 최근 실직한 코디 샌델은 블룸버그와의 인터뷰를 통해 “동료들 사이에서 중간 관리자가 가장 위험한 자리라는 농담이 늘 돌았었다”고 떠올렸다.

출처=블룸버그 라이브데이터 기술


사람은 줄었지만 보충해주기는커녕 더 자를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는 상황에서 중간관리자들은 더 많은 업무를 떠안고 있다. 글래스도어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다니엘 자오는 “중간관리자들은 적은 인력으로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 중”이라며 “해고에서 살아남은 관리자들조차 상황에 대해 비관적으로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끝없이 배우지 않으면 도태되고 마는


사실 중간관리자들의 불행은 세대 문제인 측면도 있다. 최근 BBC는 오늘날 중간관리자들이 대체로 X세대(44~65세)에 해당하는데 이들은 젊은 세대보다 능력이 부족하다는 차별적 인식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BBC는 미국의 49세 인사 전문가 닉의 사례를 소개하며 “그는 지난해 5월 해고된 후 수백 개의 일자리에 지원해서 10개 회사에서 면접 기회를 얻었지만 매번 그 자리는 더 젊은 지원자에게 돌아갔다”며 “구직기간 동안 헤드헌터로부터 고용주가 나이를 계산하지 못하도록 프로필에서 졸업 시기 등을 삭제할 것을 권유받기도 했다”고 했다.

인공지능(AI) 등 신기술의 출현은 중간관리자들의 설 자리를 점점 좁게 만드는 핵심적인 요소다. 많은 고용주들은 ‘젊음의 활기’를 ‘디지털 기술’과 동일시하기 때문이다. 런던에서 활동하는 채용 담당자인 매트 홀덴은 BBC와 인터뷰를 통해 “채용 관리자들 사이에서는 나이가 많은 근로자가 최신 기술을 따라잡지 못한다는 인식이 있다”며 “그런 편견이 없는 사람도 젊은 지원자가 더 개방적이고 더 쉽게 적응하리라는 인식을 한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러니 중간관리자들은 끝없이 배워야 한다는 불안에 시달린다. 미국의 조직컨설팅 전문가 애드리언 포터는 “나는 이메일이 막 도입됐을 때 직장에 들어와서 인터넷을 배웠고, 웹 2.0을 배웠으며 이제는 AI를 배우고 있다”며 “X세대는 배우지 않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출처=DALL-E 3


이밖에 재택 근무나 ‘조용한 퇴사자(최선을 다하지 않고 최소한의 주어진 업무만 수행하는 직원들)’ 등과 같은 새로운 직장 문화도 중간 관리자들이 극복해야 하는 업무 중 하나다. MZ 세대들은 비대면·재택 등의 하이브리드 업무 세계에 점점 더 많이 참여하고 있고 참여하기를 바라지만 중간관리자들은 애당초 대상자로 고려되지도 못한다. 글로벌 컨설팅기업 맥킨지는 “추가적인 업무 부담을 꺼리고 관리자 대열에 들어가 스트레스 받는 상황을 기피하는 Z세대가 늘어나면서 중간관리자 자체가 줄어들고 있는 것도 현재 관리자들을 힘들게 만든다"고 분석했다.

중간관리자는 사라져야 하나


물론 중간관리자가 조직에 해가 되는 경우도 많다. 중간관리자는 경직된 절차와 보고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 업무나 의사결정을 지연시키는 경우가 많다. 2016년 하버드비즈니스리뷰는 “과도한 관리로 미국에 연간 3조 달러의 비용이 낭비되고 있다”는 기사를 쓰기도 했다. 저자인 게리 하멜과 미셸 자니니은 당시 미국 기업은 직원 4.7명당 관리자가 1명으로 너무 많으니 그 비율을 직원 10명 당 관리자 1명으로 조정할 것을 제안했다. 킹스칼리지런던의 인적자원관리 교수 아만다 존스 역시 “중간관리자를 없애면 조직 구조가 평평해져 기업이 좀 더 재빨리 움직일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중간’을 없애는 것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BBC는 중간관리자를 줄이는 것이 불확실성을 초래해 역효과를 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메타에서는 관리자들을 대규모 정리해고한 후 많은 직원들은 회사 방향성을 불안해하며 업무 흐름이 정체됐다고 한다.

중간관리자를 줄이는 것이 실질적 생산성을 위협할 수 있다는 경고도 있다. 기업에는 결국 인력을 관리하는 일이 필요하고 중간관리자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직원들이 적절한 지원과 대우를 받고 있다고 느끼도록 하는 일이다. 이들이 없다면 소수의 임원들이 개별 직원에게 모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데 이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부적절한 조직 관리는 뛰어난 인재를 놓치는 중대한 요인이다. 미국 럿거스대학교의 빌 카스텔라노 인적자원관리학과 학과장은 “대부분 기업은 인적 자본으로 경쟁하는데 고용주들은 이 점을 간과하고 있다”며 “직원들의 몰입도를 유지하는 것은 훌륭한 관리자”라고 짚었다.

조직 솔루션을 제공하는 모던이그제큐티브솔루션의 수석 파트너인 빌 샤닝어 역시 “중간관리자를 해고하면 단기적으로는 비용을 줄이고 주주를 만족시킬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역효과”라며 “실제 비용이 줄어든 경우가 드물거니와 비용이 줄더라도 직원들의 낮은 참여도와 경험 부족은 장기적으로 회사에 손해를 끼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대체로 기업들은 누구를 남기고 누구를 내보낼지를 파악하는데 언제나 서툴렀다”고 말했다.




<편집자주> 우리는 하루의 많은 시간을 직장에서 보내고 ‘일의 기쁨과 실망’ 속에서 몸부림치곤 합니다. 그리고 이는 옆 나라와 옆의 옆 나라 직장인도 매한가지일 겁니다. 먹고 살기 위해선 결코 피할 수 없는 ‘일 하는 삶’에 대해 세계의 직장인들은 어떤 고민을 하고 있을까요. 앞으로 매주 토요일 ‘The World of Work’를 통해 이 시대를 살아가는 글로벌 미생들의 관심사를 다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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