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가 지난해 인도네시아에서 7176대의 아이오닉5를 팔았다. 전기차 가운데 단연 1위다. 인도네시아는 중국·러시아 등 부진한 시장을 대체할 전략적 요충지로 꼽힌다. 이곳에 생산 공장을 지은 현대차그룹은 태국·말레이시아·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전역에 전기차를 수출하는 전략을 세웠다. 이를 통해 내연기관 주력의 일본 차를 밀어내겠다는 장기적인 구상까지 그렸다.
하지만 최근 중국의 도전이 거세다. 과잉 공급의 덫에 빠진 중국산 전기차들이 값싼 가격으로 동남아에 진출하고 있다. 그룹 안팎에서는 올해 전기차 판매 1위 수성도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올 정도다.
인도네시아 시장에서는 중국 전기차와 가격경쟁이 안 된다. 현재 중국 상하이GM우링은 인도네시아에서 소형 전기차 에어 EV를 2200만 원에 판매하고 있다. 중국 체리자동차는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티고7를 3200만~4100만 원대에 판다. 반면 현지 생산하는 아이오닉5의 가격은 6300만~7300만 원대다. 현지에서 프리미엄 차량으로 분류되는 아이오닉5의 판매가 증가하려면 동남아 지역의 국민소득이 올라야 하는데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여기에 태국 전기차 시장을 점령한 비야디도 1월에 인도네시아 진출을 공식 선언했다. 동남아 1위 자동차 국가인 태국은 이미 중국산 전기차 천하다. 태국전기자동차협회(EAT)에 따르면 지난해 전기차 신규 등록 대수(7만 6366대) 가운데 비야디(30%)·네타(20%)·MG(17%) 등 중국 기업의 점유율이 80%에 달한다. 차종별 순위에서도 비야디의 ‘아토3’와 네타의 ‘V’가 각각 1만 7351대, 1만 245대로 1위와 2위에 올랐다. 상위 5개 모델 가운데 4개가 중국산이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중국 업체들이 미국과 유럽연합(EU)을 피해 과잉 공급된 전기차를 동남아 시장으로 밀어내기 시작했다”며 “현지 시장을 공략해야 할 우리 기업들에 새로운 숙제가 생겼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갓성비’를 앞세운 중국산 전기차의 국내 상륙이다. 유럽과 일본 시장에 아토3와 돌핀 등 전략 차종을 수출하고 있는 비야디는 현재 한국 승용차 시장 진출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전기차 대중화의 시기와 맞물려 국내에서도 저렴한 전기차를 찾는 수요가 커질 수 있다. 중국산 전기차들의 경쟁력은 입증됐다. 수입차의 무덤인 일본 시장에서 비야디는 지난해 총 1511대를 팔아 현대차(492대)를 압도했다.
일각에서는 드론 시장처럼 국내 전기차 시장 역시 중국 업체가 점령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중국의 DJI와 이항 등 글로벌 업체들은 2010년대 중반 값싼 가격과 높은 성능을 앞세워 국내시장을 파고들었다. 중국 업체들의 공세에 국내 업체들은 대부분 고사했고 현재 중국산 비중은 70%에 이른다. 업계 관계자는 “드론은 첨단산업임에도 비행금지구역과 같은 규제와 정책 실기가 더해져 중국 업체들의 진출에 내수 시장을 그대로 내줬다”면서 “중국의 고품질 덤핑을 막지 못하면 국내 전기차 시장도 드론 산업처럼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고 지적했다.
가격경쟁력을 앞세운 중국 배터리 업체의 공세 또한 거세다. 형태는 전기차와 유사하다. 내년 중국 전기차 시장에서 필요로 하는 배터리 용량은 최대 1200GWh이지만 업계의 생산능력은 이보다 4배 많다. 중국 배터리 업체들은 과잉 생산된 물량을 저렴한 가격으로 내놓는 ‘밀어내기식 덤핑’으로 해결할 태세다. 중국 최대 배터리 기업인 CATL은 올 하반기 리튬인산철(LFP) 배터리셀을 Wh당 0.4위안(약 74원)에 공급하기로 했다. 배터리팩 가격인 ㎾h로 환산하면 75달러(약 10만 원)로 시장 평균의 절반에 그친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CATL이 LFP 배터리를 반값에 공급하면 버틸 재간이 있을까. 심히 우려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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