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폭염으로 지난달 주택 전기요금이 평균 13% 오르면서 전기요금 인상 시기를 저울질하던 정부의 계획에도 차질이 빚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1년 전보다 전기요금을 더 내야 하는 가구 수가 전체의 76%로 워낙 광범위한 데다 10만 원 이상 인상된 가구도 38만 가구에 이른다. 단순히 해외 주요국과 비교해 우리나라의 전기요금이 저렴하다는 논리만으로는 당장 다음 달부터 평균 13%오른 ‘전기요금 청구서’를 받게 될 국민들을 설득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9일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전력에 따르면 정부는 올여름 무더위로 전기 사용이 급증하면서 가계의 전기요금 부담이 커지자 요금 인상 시기를 다시 저울질하고 있다. 최근 8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에 그치며 지금이 전기요금 인상의 ‘적기’라고 판단했지만 주택 전기요금이 폭등하면서 새 판을 짜야 하는 상황에 놓였기 때문이다.
한전은 지난달 전기 사용량이 늘었지만 냉방 수요 증가에도 국민들의 자발적인 전기 절약으로 전기요금 증가가 우려했던 것보다는 크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전체 가구 수(2522만 가구) 가운데 76%인 1922만 가구의 8월 전기요금이 1년 전보다 늘어난 것으로 추산됐지만 해외 주요국의 전기요금에 비해서는 여전히 높지 않다는 것이다.
한전에 따르면 8월 한국의 주택용 가구당 평균 사용량인 363㎾h의 전기를 썼을 때 요금이 일본·프랑스는 한국의 2배 이상, 미국은 한국의 2.5배, 독일은 한국의 3배 수준이다. 구체적으로 미국의 SCE는 한전의 2.5배인 약 16만 원을, 프랑스의 EDF는 2.3배인 약 15만 원의 요금을 부과한다. 일본 도쿄전력은 한전의 2.1배인 약 14만 원, 호주의 오로라에너지는 1.8배인 약 12만 원을 부과한다. 홍콩의 CLP는 1.3배인 약 9만 원의 전기요금을 매긴다. 한전 관계자는 “국민소득을 감안해야겠지만 우리나라 전기요금이 해외 주요국 대비 저렴한 것은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한전의 이 같은 해명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전기요금 인상 시기가 뒤로 밀릴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전기요금 자체가 워낙 국민 생활과 밀접하다 보니 여론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달 전기요금이 인상된 가구로 한정할 경우 평균 증가액은 1만 7000원 수준이지만 인상 적용 대상 가구가 워낙 넓다. 한전에 따르면 1년 전보다 5만~10만 원 이상 전기요금을 더 내야 하는 가구는 75만 가구, 10만 원 이상 더 내야 하는 가구 수도 38만 가구에 달한다. 4인 가구 기준으로는 450만 명이 넘는다.
한전이 지난해 8월보다 전기요금이 줄어든 가구 수가 전체의 23%에 달했다는 설명도 되짚어봐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전은 “역대급 무더위 속에서도 전기 절약을 실천한 국민들의 노력”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누진제 부담에 따른 전기료 폭탄을 우려해 냉방기를 사용하지 못한 가구가 늘어난 결과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전은 고객들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전기요금 분할 납부 제도를 시행하고 사용량을 즉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실시간 전기 사용량 조회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국내 취약 계층과 고액의 전기요금 대상자를 위해 취약 계층 여름철 복지 할인 제도나 전기요금 분할 납부 같은 지원책을 운영하고 있다. 한전은 사회적 보호가 필요한 취약 계층에 지원되는 여름철 복지 할인의 한도를 최대 2만 원까지 확대하고 지난해 1월과 5월 요금 인상분 21.1원/㎾h 적용을 유예해 연간 1조 원 규모를 지원하고 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