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가 일상이 되면서 탄소를 발생시키지 않는 에너지로의 전환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생존 전략이 됐다. 탄소 중립을 향한 전 지구적 흐름 속에서 우리나라도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온실가스 배출량을 40% 감축하겠다고 공언했다. 이른바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다. 이에 따라 무탄소 에너지 중심의 공급 체계 전환, 전기화, 화석 에너지 산업 구조 전환이 진행 중이다.
문제는 속도와 현실성이다. 최근 국제에너지기구(IEA)가 발표한 ‘일렉트리시티 2025’ 보고서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전력 수요는 전례 없는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무탄소 에너지원을 늘리면서 이들 전력을 전력망에 안정적으로 수용해 수요지로 송전할 수 있어야 화석연료 대체를 통한 탄소 중립이 가능하다.
대표적 무탄소 에너지원인 태양광·풍력 같은 재생에너지가 날씨에 좌우되는 특성이 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이로 인해 유럽·미국·호주 등에서는 전력이 남아도는 마이너스 전기요금 현상까지 발생하고 있다. 기후이변 역시 변수다. 지난해 여름의 폭염과 폭우·허리케인·가뭄은 미국과 남미 등지에 대규모 정전을 초래했다. 그 결과 IEA는 전력 시스템의 유연성과 복원력을 높이기 위한 제도적 장치와 송배전망 강화, 저장소 확보가 시급하다고 진단했다. 이쯤 되면 단지 에너지원을 바꾸는 차원을 넘어 에너지 공급 구조 자체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 해답 중 하나가 ‘분산전원’이다. 한국의 에너지 체계는 아직도 수도권과 먼 지역의 대규모 발전소와 전국적 송전망에 의존하는 중앙 집중형 구조다. 이런 체계는 특정 지역에서 송전망이 지연되면 전력 공급이 지체되는 구조적 한계를 지닌다.
이에 따른 대안으로 ‘분산에너지특별법’이 제정되며 전환의 전기가 마련됐다. 분산전원은 지역 단위에서 에너지를 생산·소비하는 ‘지산지소(地産地消)’ 구조로 마을 단위의 태양광, 소규모 연료전지, 지역 열병합발전소 등이 이에 속한다. 이런 시스템은 송전 손실을 줄이고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할 수 있다. 특히 지역 내 에너지 자립도가 높아지면 기업의 지방 이전 유인이 증가하며 지역소멸 문제 해소에도 일정 역할을 할 수 있다. 분산특구 공모에 11개나 되는 지방자치단체가 출사표를 던진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분산전원은 ‘법’ 하나로 작동하지 않으며 현실의 벽은 여전히 높다. 에너지 공급 체계는 중앙정부 주도로 규제되고 있으며 분산전원 설치에 따른 전력망 연계, 요금 체계, 설비 기준 등은 여전히 규제 장벽이 높다. 결국 분산특구가 실효성 있게 작동하려면 파격적인 규제 완화와 적극적인 인센티브가 필요하다. 지역 주민과 기업이 참여할 수 있도록 실질적 수익 구조와 행정 지원을 보장해야 한다. 예컨대 소규모 분산전원의 발전 전력을 우선 구매하거나 탄소배출권과 연계한 보상 체계를 마련하는 방식이 가능하다.
탄소 중립은 더 이상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와 산업의 필수적 생존 전략이다. 핵심 역할을 하는 에너지는 반드시 저탄소면서도 값싸고 안정적으로 공급돼야 한다. 중앙 집중형 시스템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이제는 중앙과 지방이 에너지 생산과 소비의 주체로 공존하는 시대를 설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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