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30일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제28회 서경 금융전략포럼’에 참석해 “아마도 서울경제신문의 행사가 마지막일 것 같다”며 강연을 시작했다. 임기 만료일이 6월 5일인 이 원장은 금감원장으로서 일할 시간이 한 달여밖에 남지 않았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금융산업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을 잊지 않았다.
이 원장은 이날 금융권의 부동산 대출 쏠림에 대해 강한 문제의식을 드러냈다. 그는 “계약서를 위조하거나 담보 가치를 높이기 위해 여신을 받는 사람과 유착 관계가 생기는 것과 같은 문제가 많다”며 “이와 관련해 내부통제 측면에서 어떤 인센티브를 마련해야 할지 고민을 안 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과거에는 30억~50억 원 수준의 금융 사고도 크다고 여겨졌는데 최근에는 500억 원 이상 규모의 사고가 나야 국민적 관심이 갈 정도”라고 부연하기도 했다.
이 원장은 내부통제 제도 개편만으로는 부동산 관련 금융 사고를 방지할 수 없다고 내다봤다. 그는 “최근 금융회사 지배구조법상 책무구조도 제도가 마련됐지만 이 역시 형해화한다면 끝도 없이 형식화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강조했다. 책무구조도는 금융사 임원들이 담당하는 직책에 따라 구체적 책임을 명시한 것으로 올해 1월부터 은행권을 중심으로 도입되기 시작했다.
이 원장은 부동산 쏠림은 금융권 내부의 과도한 성과주의에 원인이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는 시장 유동성의 크기가 커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결국은 (금융 조직 내부의) 성과주의의 문제와도 관련이 깊다”고 짚었다. 각 금융기관 내부에서도 부실 위험이 낮은 주택담보대출이나 사업성이 높았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독려하는 문화가 강했다고 에둘러 지적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원장은 “은행도, 보험사도, 새마을금고도, 농협도 위험가중치가 낮은 주담대 위주로 취급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여수신 기능을 받은 것은 특혜인데 농업협동조합이나 새마을금고·신용협동조합 등은 지역금융을 외면한 채 부동산 금융에만 매달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저축은행과 상호금융 제도의 취지는 각 지역 상황에 대한 이해를 토대로 담보는 없지만 다음에 성실하게 갚을 것으로 예상되는 사람들에게 금융을 제공하라는 것”이라며 “그러나 지금은 대구·광주 지역의 상호금융이 온라인으로 예금을 열심히 모집한 다음에 수도권 부동산에 투자를 하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한국 경제의 지나친 부동산 의존은 거시경제와 자산시장 전반의 리스크를 키울 수 있다는 게 이 원장의 판단이다. 그는 “과거에는 건설업을 촉진해 내수 경기를 부양하는 것이 정무적으로 쉽고 실제로도 필요한 일이었다”며 “하지만 지금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세계에서 4~5번째로 높아 총수요를 위축시킬 정도”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이 원장은 내부적으로 부동산 대출에 대해 건전성 규제상 페널티를 주고 벤처 투자와 관련해서는 우대해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원장은 디지털 전환 대응 측면에서도 금융사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노년층처럼 디지털 금융에 익숙하지 않은 계층에 대해 책임 의식이 필요하다는 해석이다. 이 원장은 “가상자산 거래를 통한 보이스피싱 자금 유출이 수백억 원에 달한다고 한다”며 “이와 관련해 가상자산거래소와 우리 금융업권에는 책임이 없는지도 봐야 한다. 디지털 혁신 과정에서 금융권이 얻은 이익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노년층처럼 디지털 금융에 익숙하지 않은 계층에 대해 책임 의식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 원장은 “금융권은 디지털 전환을 통해 경비를 절감하고 새로운 상품을 만들어가며 분명한 부가가치를 얻는 부분이 있다”며 “어르신분들처럼 디지털 전환에서 소외된 분들에게 부가가치를 어떻게 배분할지 고민을 (업계가) 같이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인공지능(AI) 적용과 관련해서는 “올 상반기 중으로 금융권 AI 규율 가이드라인도 발표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금융사의 AI 기술 적응을 돕는 것 역시 금융 당국의 역할이라고 이 원장은 부연했다. 그는 “금융사들이 AI 모델을 쓰려면 성격에 맞는 정보가 있어야 한다”며 “금융사들이 공적 정보를 활용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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