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도시 정비나 재생 사업을 위한 지구단위계획을 수립할 때 공공산후조리원, 공공예식장, 노인문화시설 등을 공공기여(기부채납) 시설로 지을 수 있게 됐다. 그동안 법령 규제에 가로막혀 재건축·재개발 사업때 공공산후조리원과 같은 시설을 공공기여로 짓기 힘들었지만 앞으로는 저출생·고령화 등 인구구조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다양한 시설을 공공기여로 도입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3일 서울시의회에 따르면 이러한 내용을 담은 '서울시 도시계획조례 일부개정조례안’이 지난달 29일 시의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국토계획법)과 시행령에 따르면 지구단위계획에서 용도지역 변경으로 용적률이 높아지거나 건축제한이 완화돼 이익을 볼 경우 계획구역에 공공시설 등을 설치해야 한다. 공공기여 시설로는 공공·기반 시설이나 조례에서 공공성이 필요하다고 인정한 시설로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시행령과 조례가 공공기여 시설을 제한적으로만 규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시행령에 근거해 도시 개발 사업 때 공공기여를 받을 수 있는 시설 용도는 학교·공원·경로당 등이다. 시행령에 포함되지 않더라도 조례로 공공기여 시설을 정할 수 있지만 서울시 조례에는 공공임대주택·기숙사·공공임대산업시설 등만 명시돼 있다. 도시 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을 적용해 공원 내 설립하는 방법이 가능하지만 시행규칙 역시 장사 시설, 동물 놀이터 등만 명시하고 있다.
규제에 가로막힌 대표적인 시설이 공공산후조리원이다. 공공기여가 가능하려면 법령이 정한 학교·공공청사·문화시설·체육시설·사회복지시설·청소년수련시설에 해당해야 하지만 산후조리원은 어디에도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복지시설은 노인복지관·경로당·어린이시설처럼 노인복지법이나 아동복지법에서 규정한 시설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공공산후조리원은 산모와 관련된 시설이어서 적용되지 않는다.
실제로 용산구는 공공산후조리원 신설을 추진하다 규제에 가로막히자 지난해 9월 서울시 구청장협의회 정기회의에 이어 올해 1월에는 서울시 자치구 규제철폐 건의안을 제출했다. 용산에서는 산후조리원을 찾기 어려워 신혼부부들이 강남 등에서 비싼 비용을 지불하며 조리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정안은 지구단위계획 공공기여 시설에 저출생·고령화 대책 지원 시설을 신설했다. 공공산후조리원이나 공공예식장은 물론 노인돌봄센터, 고령층 지원시설 등 저출생·고령화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필요한 새로운 시설들이 도시계획 논의 단계에서 도입되도록 용도를 확대했다. 최근 출산율과 혼인 건수가 반등하고 있지만 결혼 비용, 산후조리 비용이 비싸 공공시설 확대 필요성이 커졌다.
더욱이 공공기여 시설에 공공지원시설을 신설해 저출생·고령화 이외의 문제에도 대응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고립은둔청년센터나 도시재생지원센터 등 공공지원이 필요한 시설들이 새로 도입될 전망이다.
이번 개정은 최근 공공기여 시설을 두고 서울시와 조합 간 갈등이 확산하는 문제를 반영한 조치이기도 하다. 여의도 신속통합기획 1호 사업지인 시범 아파트에서 서울시가 데이케이센터를 공공기여로 짓도록 했지만 조합 측이 거부하면서 1년간 갈등이 이어졌다. 서울시가 노인 증가에 대비하고 새로운 노인문화시설을 확대하기 위해 공공기여 규정을 재정비할 필요성도 높아진 상황이다.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도시계획균형위원회 이상욱 의원(국민의힘·비례)은 “이번 조례 개정은 변화하는 사회적 환경에 부응하는 도시계획의 새로운 전환점”이라며 “공공산후조리원과 돌봄센터 등 다양한 공공기여 시설이 제도권 안에서 더욱 활발히 도입될 수 있도록 뒷받침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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