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무구조도 도입은 요 근래 금융업권의 주요 화두이다. 과거에 대형 금융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금융회사의 내부통제 부실 문제가 지적되었다. 금융회사와 임직원들을 어떠한 근거로 어디까지 제재할 수 있는지에 대해 실무상 논란도 있었다. 개정「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면서 책무구조도 도입 의무가 마련된 것은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 기반한 것이다. 책무구조도는 영국 금융서비스 및 시장법(Financial Services and Markets Act 2000: FSMA)상 고위 경영자 및 인증제도(Senior Managers and Certification Regime, SM & CR)에 근거하고 있는 고위 경영자 및 거버넌스에 대한 책임지도(responsibilities map) 제도를 벤치마킹한 것이다.
책무구조도 도입에 따라 금융회사 임원별로 소관 영역에 대한 내부통제 ‘책무’가 명확하게 식별, 배분되어야 한다. 임원은 소관 영역에서 내부통제·위험관리 기준이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관리조치를 이행해야 한다. 대표이사는 전사적 내부통제체계를 구축하고 임원들의 내부통제 활동을 감독하는 내부통제 ‘총괄’ 관리 의무를 부담하며, 임원별 내부통제 책무를 배분한 ‘책무구조도’를 작성해서 금융당국에 제출해야 한다. 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으면 대표이사와 고위임원들에게 중징계가 부과될 수 있기 때문에 세간에서 ‘금융판 중대재해처벌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법에 따라 책무구조도를 도입해야 하는 기한은 업권별로 다르다. 은행·금융지주회사는 올해 1월 책무구조도 제출을 완료했다. 금융투자업자·보험사는 자산총액·운용재산 규모에 따라 올해 7월 또는 내년 7월까지, 여신전문금융회사·저축은행은 자산총액 규모에 따라 내년 7월 또는 후년 7월까지 책무구조도를 도입해야 한다.
책무구조도 도입을 준비하는 금융회사들은 고충이 많다. 각자의 영업, 내규와 조직 현황을 전반적으로 점검해서 법의 취지에 맞게 내부통제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조직 개편, 업무 분장·조정, 인사이동이 수반되는 경우가 생긴다. 내규도 정비해야 하고 전산시스템과 업무 프로세스를 변경해야 한다. 간단한 일이 아니고 전사적인 역량이 투입되어야 하는 프로젝트이다. 여기에 드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금융당국도 새로운 제도 정착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책무구조도 시범운영 제도를 시행해서 업권별 책무구조도 도입 기한 전에 참여를 희망하는 금융회사로부터 책무구조도를 조기에 제출받아 사전 컨설팅을 해주고 있다. 시범운영 기간 중에는 내부통제 관리 의무가 완벽하게 이행되지 않더라도 책임을 묻지 않는 등 인센티브도 준다. 컨설팅 과정에서 금융회사들에 공통적으로 발견된 실무상 쟁점에 대해 일정한 가이드라인을 제공하려는 노력도 병행하고 있다.
당분간은 시행착오가 불가피할 것이다. 축적된 실무가 많지 않고 금융회사마다 경영 여건과 조직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금융당국이 제공하는 컨설팅이나 가이드라인에만 의존해서 개별 회사들이 내부통제 시스템을 단기간에 완결적으로 보완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러 어려움이 있겠지만, 금융회사의 적극적인 실행 의지와 금융당국의 적정하면서도 유연한 감독권 행사가 결합되어 책무구조도 도입이 대형 금융사고를 예방하고 금융회사의 내부통제 시스템이 한층 고도화되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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