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금융그룹이 동양·ABL생명 인수 절차 최종 문턱을 넘었다. 금융 당국이 최근 우리금융에 대해 조건부로 인수를 승인하면서다. 우리금융이 증권과 보험을 아우르는 종합금융그룹으로 도약할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4일 금융계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지난 2일 정례회의에서 우리금융의 동양·ABL생명 인수와 관련해 조건부 승인을 의결했다. 우리금융이 지난해 8월 말엽 중국 다자보험과 동양·ABL생명 인수를 위한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한 지 약 8개월 만이었다.
순탄치 않았던 동양·ABL생명 인수 과정
우리금융의 동양·ABL생명 인수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인수 계약 직후 손태승 전 우리금융 회장의 친인척 관련 부당대출 사건이 터지면서다. 이 때문에 우리금융의 내부통제 부실 논란과 전·현직 경영진의 법적 책임론이 불거지기도 했다.
특히 지난 3월 금융감독원이 우리금융 경영실태평가 종합등급을 2등급에서 3등급으로 강등하면서 우리금융의 동양·ABL생명 인수에 제동이 걸렸다. 금감원은 내부통제 미흡과 인수합병(M&A) 과정에서의 사전 검토 부족을 등급 강등의 이유로 들었다.
다만 종합등급이 3등급이어도 자본 확충 계획과 같은 별도 개선 방안을 마련하면 자회사를 인수할 수 있다. 원칙적으로 종합등급이 2등급 이상이어야 금융지주의 자회사 편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금융위는 지난 3월 말부터 총 네 차례에 걸쳐 우리금융 자회사 편입 관련 안건 검토 소위원회를 열며 숙고에 들어갔다. 우리금융은 금융위에 자체 내부통제 개선 계획과 자본 관리 계획을 제출하며 설득에 나섰다.
구체적으로는 올해 1분기 말 12.42% 수준이었던 보통주자본(CET1)비율을 2027년 말까지 13% 이상으로 끌어올리겠다고 밝혔다. 지배구조 측면에서는 회장 3연임 시 출석 주주 의결권의 3분의 2 이상과 발행 주식 총수의 3분의 1 이상을 필요로 하는 주주총회 특별 결의 절차를 거치도록 하겠다고 했다. 회장 장기 집권을 방지하는 장치를 마련하겠다는 의미다.
경영실태평가 지적 사항 21건 중 17건을 개선했다는 점도 피력했다. 금융 당국의 개선 요구를 충실히 이행하겠다는 점을 피력한 것이다.
금융 당국도 우리금융의 제출한 개선 계획대로라면 동양·ABL생명 인수에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금융위는 “우리금융이 제출한 내부통제 및 자본 관리 개선 계획이 차질 없이 이행되는 경우 종합등급 개선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다만 금융 당국은 2027년 말까지 우리금융이 제출한 개선 계획이 제대로 이행되고 있는지 반기별로 금감원에 제출하도록 조건을 달았다.
5위권 생보사 편입…비은행 포트폴리오 강화
우리금융은 동양·ABL생명 인수로 비은행 부문 포트폴리오를 대폭 강화할 수 있게 됐다.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은 서울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증권사에 이어 보험까지 갖추게 되면 종합금융그룹으로서 기본적인 골격을 마련하게 된다”며 “그룹사 안에서 시너지가 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말 기준 동양생명과 ABL생명의 자산은 총 53조 2427억 원으로 업계 5위인 NH농협생명(53조 2536억 원)과 엇비슷하다. 순식간에 5위권 생보사가 출범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우리금융이 동양·ABL생명에 사활을 걸었던 이유는 우리은행에 의존하는 포트폴리오 때문이다. 우리금융 순익에서 은행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말 기준 98.5%나 된다. 비은행 비중이 2%가 채 안 된다.
은행 수익에 따라 크게 출렁이는 그룹 경영실적을 개선하려면 보험사 인수가 절실했다. 우리금융의 1분기 당기순이익(6156억 원)은 전년 동기 대비 25.3% 급감했는데 그룹을 지탱해온 우리은행의 순익(6331억 원)이 19.8% 줄어든 영향이 컸다.
동양·ABL생명의 실적이 예년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할 경우 분기마다 750억 원가량의 순익을 더 챙기면서 은행 부문 손실을 만회할 수 있을 것으로 우리금융은 예상하고 있다. 순익이 전보다 10% 이상 늘어날 것이라는 얘기다.
우리은행과 동양·ABL생명 간 시너지 효과도 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우리은행의 방카슈랑스 영업망을 통해 동양·ABL생명의 상품 판매를 보다 늘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다. 동양·ABL생명의 운용자산을 우리금융 자회사인 우리자산운용에 맡겨 자산운용사의 몸집을 키우는 방안도 들여다보고 있다.
우리금융이 지난해 한국포스증권을 인수해 우리투자증권을 출범한 것도 임 회장의 비은행 확대 기조의 일환이다. 우리금융은 5대 금융지주 중 유일하게 별도의 증권 계열사가 없었다. KB금융그룹(KB증권)과 신한금융그룹(신한투자증권), 하나금융그룹(하나증권), NH농협금융지주(NH투자증권)가 각각 대형 증권사를 두고 있는 것과 대비된다. 우리금융은 지난 3월 금융위로부터 우리투자증권의 투자매매업 변경 인가를 받으며 종합증권업 진출을 본격화했다.
우리금융은 오는 7월 초 동양·ABL생명 주주총회를 열어 새로운 경영진을 선임하고 자회사 편입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신임 동양생명 대표는 지난해부터 보험사 인수 단장을 맡아온 성대규 전 신한라이프 대표가 유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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