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는 1970년생 홍 모 씨는 정년 퇴임이 다가올수록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홍 씨의 주민등록상 출생 연도는 1969년. 실제 출생 연도 기준보다 한 해 빠르게 퇴직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기 때문이다. 홍 씨가 태어날 당시 그의 집안은 제사 등 대소사를 음력으로 따져 기념하던 관습에 따라 자녀의 생년월일 또한 음력 날짜로 신고를 했다. 호적에 음력 생일이 기재돼 있어 주민등록상 나이가 한 살 많게 올라간 것이다.
홍 씨는 생년월일을 정정하기 위해 가정법원에 가족관계등록부 정정 신청을 하며 음력 생일이 적힌 집안 족보와 사주단자, 어릴 때 작성했던 일기 등을 증거 자료로 제출했다. 자신의 음력 생일을 알렸던 대화 내용이나 지인들로부터 받은 생일 기념 메시지 또한 활용했다. 그 결과 재판부는 홍 씨의 생일을 실제 양력 출생 연도인 1970년으로 정정 허가를 결정했고 홍 씨는 직장에 정정된 가족관계등록부를 제출해 정년을 1년 연장하는 데 성공했다.
실제 나이와 서류상 나이에 차이가 생겨 이를 바로잡으려는 직장인들이 최근 들어 늘어나고 있다. 서류상 나이가 실제보다 많으면 보다 빠르게 정년퇴직을 해야 하는데, 과거에는 이른 나이에 사망한 형의 신분을 그대로 이어받거나 음력 생년월일을 그대로 서류에 등록하는 등 출생신고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다.
법원행정처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해 가족관계등록부 정정 신청 건수는 총 1만 371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2022년 8910건, 2023년 9507건에 이어 3년 연속 증가한 수준이다. 가족관계등록부 정정 중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출생 연월일 정정으로 지난해에만 4759명이 자신의 출생일 바로잡기에 나섰다.
생년월일 정정을 위해서는 사건 당사자의 등록기준지 관할 법원에 찾아가 허가를 받아야 한다. 다만 그 과정은 쉽지 않다. 기본증명서, 가족관계증명서, 등·초본, 제적등본은 물론 자신의 나이를 소명할 수 있는 자료를 제출해야 한다. 출생증명서가 있을 경우 허가 가능성이 높아지지만 이를 보유하고 있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에 족보나 돌 사진, 백일 사진, 학적부 등 다양한 증거를 수집해야 한다. 공적 자료가 아예 없을 경우 실제 생년월일을 밝혀온 일상 자료도 활용 가능하다.
신청자 대부분이 정년퇴직을 앞두고 정년을 연장하려는 직장인인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최근에는 정년퇴직 후 조기 연금 수령과 노인 일자리 혜택 등을 위해 반대로 나이를 많게 정정하려는 시도도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이 경우에는 이미 오랜 기간 기존의 생년월일로 지내왔기 때문에 허가율이 상당히 낮은 것으로 파악됐다.
가족관계등록부 정정 신청을 전문으로 하는 법무법인 테헤란의 이수학 대표변호사는 “법원에서는 본인이 희망한다는 이유만으로 생년월일 정정을 허가해주지 않으며 특히 신청서를 작성할 때 정년 연장이 주된 사유가 되면 안 된다”며 “객관적인 소명 자료를 요구하고 추가 요청하는 보정 명령이 빈번한 만큼 진입장벽이 높지만 실제 나이보다 빠르게 정년퇴직을 하는 등 부당한 상황에 놓이지 않기 위해서는 정정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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