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뉴욕 플라자 호텔에 모인 미국, 일본, 프랑스, 독일(당시 서독), 영국 등 주요 5개국(G5) 정상은 달러화의 지나친 강세로 인한 무역 불균형을 바로잡기 위해 역사적인 ‘플라자 합의’를 체결했다. 해당 환율 조정 합의로 달러 가치는 6주 만에 10~12% 하락했으며 이후 2년간 엔화와 마르크화 등 주요 통화 대비 50% 가까이 절하됐다. 달러화 급락 영향으로 전 세계 자산 시장 역시 큰 충격을 받았다.
최근 미국의 주요 통상국들과 관세 협상 과정에서 환율 조정 논의가 있었음이 알려지면서 이른바 현대판 플라자 합의 가능성이 언급되고 있다. 5월초 대만과 미국의 무역협상 과정에서 통화 절상 논의에 대한 시장루머와 함께 달러대비 대만통화 환율이 2거래일 만에 6% 급등하는 모습을 보였다. 대만 중앙은행이 자국통화 강세를 용인하지 않을 것이란 기대로 달러자산에 대한 환헤지 비중을 낮춰두었던 대만 보험사들이 급하게 환헤지 비중을 확대하면서 단기 변동성이 극대화된 것이다. 다시 한번 환율이 예측 불가능한 위험 요소로 떠오르자 투자자들의 포트폴리오도 위협을 받고 있다.
대만 보험사만의 문제일까? 은퇴 자금 관리 역시 ‘최고의 수익추구’보다 ‘최악을 막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연금과 같이 은퇴 후 생활비를 찾아 쓰고 있거나 장기 적립을 통해 자산 규모가 커진 경우 높은 환율 변동성은 간과할 수 없는 위험이다. 환 노출형 펀드는 글로벌 자산 수익률에 환율 변화에 따른 손익까지 더해지기 때문에 투자자는 자산 변동성에 더불어 환율 변동성이라는 위험까지 이중으로 부담하게 된다.
지난 10년간 글로벌주식시장(ACWI)에 투자해 은퇴를 준비한 한국 투자자라면 환 노출 투자 시 12%대 수익을, 환 헤지 투자 시 7%대 수익을 거뒀을 것이다. 10년간의 원화 약세로 33% 이상 달러가 상승한 영향이다. 만약에 달러 강세 되돌림이 발생한다면 환 노출 투자자는 그동안 쌓아온 성과를 일정 부분 반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반면 환헤지 투자자는 상대적으로 원화 약세를 편안하게 지켜볼 수 있다.
연금 개시까지 20~30년 이상 투자할 사회 초년생들은 긍정적인 환율 전망에 기대어 환 노출 펀드로 연금 자산을 운용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은퇴를 앞두고 있거나, 은퇴한 투자자들은 환위험 노출 지속 여부를 반드시 점검해야 한다.
연금 자산은 은퇴 이후 삶을 지키는 근간인 만큼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환율의 급격한 변동 시 투자자의 심리적 불안으로 투자 유지가 어려워지는 위험까지 고려해야 하는 이유다.
연금이라는 장기 투자 항해에서 환 헤지 전략은 ‘암초를 피하기 위한 레이더’와 같은 역할을 한다. 최악의 경우를 피해야 하는 은퇴자라면 환율 예측보다 환율 리스크를 관리하는 환 헤지형 펀드 투자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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