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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아침에] 리콴유·세종대왕의 행정 혁신 리더십

고광본 논설위원·선임기자

행정 쇄신해야 국부 창출·위상 제고

이건희 “기업2류·행정3류·정치4류”

정권 바뀔 때마다 조직 개편에 치중

직무군별 인사 등 생태계 혁신해야

고광본 논설위원·선임기자




싱가포르는 1965년 말레이시아에서 독립할 당시 높은 실업률, 인종 갈등, 자원 부족 등 복합 위기에 처했다. 초대 총리로서 ‘국부’로 불리는 리콴유는 고민 끝에 영어 공용화, 인종 다양성, 이념 초월 외교 전략을 세웠다. 국가를 기업처럼 경영하는 방식으로 공직 사회에 능력주의와 부패 제로 문화를 뿌리내리며 민첩하고 유능한 정부 만들기에 주력했다. 인재를 적극 육성하면서 높은 보수와 경쟁적 평가 시스템을 정착시켰다. 오늘날 싱가포르가 ‘아시아 허브’ 위상을 구축한 게 이 덕분이다. 물론 야당·언론 탄압 등 권위주의 정치, 리콴유 일가·측근들의 정부·국영 기업 장악 등 부정적 유산도 있지만 싱가포르는 혁신의 롤모델로 손꼽힌다.

우리 역사에도 리콴유 못지않은 행정 혁신의 지도자가 있었다. 한글 창제, 집현전 활성화, 공정한 법 집행 등을 통해 과학기술·국방 강화와 문화 융성의 기반을 마련한 세종대왕이다. 일본의 ‘과학사기술사사전(1983년 발간)’ 연표를 보면 당시 조선의 과학기술 업적이 21개로 명나라(4개), 일본(1개)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세종대왕 시기뿐 아니라 현대 들어 ‘개발 독재’ 시절에도 급속한 경제 발전 과정에서 행정의 역할이 컸다. 국가 차원에서 경제개발계획을 짜서 주요 자원을 민간에 배분하던 시절이어서 공무원의 위상이 매우 높았다.

그러나 1990년대 세계화 시대를 맞아 기업의 역할이 커지면서 행정은 점차 효율성을 잃기 시작했다. 이건희 삼성 회장은 1995년 “기업은 2류, 행정은 3류, 정치는 4류”라고 작심 발언해 김영삼 대통령의 분노를 자아냈다. 이 회장은 ‘문민정부가 들어섰음에도 삼성 반도체 공장 건설에 1000개의 도장이 필요하고 자동차 사업 진출 허가도 부산 시민들의 탄원이 뒷받침돼서야 받았다’는 취지로 꼬집었다. 기업 입장에서 정경유착 터널을 지났지만 행정과 정치가 발목을 잡아 초일류로 부상하지 못한다는 속내를 내비친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 회장의 발언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하다. 기업들은 낙후한 정치 문화와 비효율적 행정으로 인해 외국 기업들과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기업이 잘돼야 일자리와 세금 등이 늘어나 부국강병의 토대를 만들 수 있는데 행정과 정치가 기업을 도와주기는커녕 발목을 잡는 형국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올해 경제성장률을 1.6%에서 0.8%로 대폭 낮췄다.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은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코로나19 팬데믹 때보다 더한 불경기”라며 한숨을 내쉰다.



결국 행정과 정치의 대대적 혁신으로 기업 경쟁력을 높여 미래를 준비하는 국가 체계를 만드는 것밖에 답이 없다. 당장 6·3 대선 직후 새 대통령이 취임하면 정치 복원과 국정 리더십 회복 못지않게 행정 혁신과 공무원 사기 진작을 통해 민관정(民官政)이 함께 뛰는 문화와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문제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행정 혁신이 변죽만 울리다가 끝났다는 점이다. 의식과 행태, 문화 등 소프트웨어보다 조직 개편 등 하드웨어 변화에만 치중했기 때문이다. 부처를 떠나 직무군별로 인사해 범부처 융합을 꾀하는 등의 과감한 시도는 엄두를 내지도 못한다. 관료들의 집단 반발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자신들의 밥그릇 지키기에 집착하면서 생산적으로 일하기보다는 보고에 치중하며 관성에 따라 움직이는 게 공무원 사회의 민낯이다. 공무원들은 일을 벌이면 생기기 마련인 갈등 자체를 회피하면서 부처와 조직 간 칸막이와 규제 사슬을 통해 기득권을 유지한다. 경직된 조직 문화와 낮은 보상 체계로 MZ 세대 공무원의 이탈도 가속화하고 있다. “소는 누가 키우냐”는 자조적 분위기가 공직 사회에 만연해 있다. 에스토니아처럼 디지털 전환 가속화를 추진한다고 했지만 외려 규제가 더 늘어나는 역설에 처했다.

제조업과 청년의 취업이 최악인 상황에서 앞길을 어떻게 헤쳐가야 할지 막막한 게 현실이다. 이런 때일수록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 등 주요 대선 후보들이 표심을 노린 선심 공약을 남발할 게 아니라 나라의 지속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국가 혁신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 어떻게 기업의 족쇄를 제거하고 구조 개혁을 추진해 신성장 동력을 점화할지 근본적인 행정 혁신 방안을 고민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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