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중앙은행과 각국 정부의 외환보유고에서 미국 달러가 차지하는 비중이 역대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미국의 정치·경제적 불확실성이 확산하면서 금이나 엔화 등 대체 자산 수요가 급증하며 ‘달러 1강(强)’ 체제가 흔들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16일 니혼게이자이신문이 국제통화기금(IMF) 통계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말 기준 전 세계 외환보유고는 12조3641억 달러(약 1경7000조원)이며 이 중 달러가 차지하는 비율은 57.8%로 1995년 통계 작성 이후 연말 기준 가장 낮았다.
외환보유고는 외환 위기나 수입 결제 등 긴급 상황에 대비해 각국 정부가 쌓아둔 자금으로, 외화 표시 채권·예금·금 등이 포함된다. 최근 몇 년간 미국의 적국 대상 금융 제재와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고조되면서 세계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들은 보유 자산을 분산하면서 달러 의존도를 낮춰왔다.
달러의 대안으로 부상한 것은 금이다. 세계금위원회(WGC)에 따르면 러시아는 2024년 말 기준 외환보유고의 32%에 해당하는 약 2300톤의 금을 보유하고 있다. 10년 전보다 두 배 가까이 증가한 규모다. 미국은 러시아와 중국 등에 대해 달러 결제망에서 배제하는 금융 제재를 여러 차례 시행해 왔다. 이에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에 불만을 품은 국가들은 달러 외 자금 결제 체제 구축을 추진하는 한편, 회피 수단으로 금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다.
일본 엔화도 다시 부각되고 있다. 지난해 말 세계 외환 보유고에서 엔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5.82%로, 3년 연속 늘고 있다. 지난해 일본은행(BOJ)이 금리 인상을 단행하며 오랜 ‘제로 금리’ 체제에서 벗어났고, 이에 일본 국채의 수익률이 상승해 엔화 보유 매력이 커진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반면, 2000년 전후 70%를 넘었던 달러 비중은 매년 줄어드는 추세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2기 출범으로 많은 국가들이 리스크 회피 차원에서 달러를 줄이고 다른 자산을 확대하면서 ‘미국 통화 이탈’은 가속화하고 있다. 한편 중국은 세계 외화보유고의 4분의 1에 달하는 약 3조 4500억 달러를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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