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현대중공업(329180)과 한화오션(042660)이 16일 제주에서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각각 비공개 면담을 진행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국 조선업 부활을 위해 한국 조선업에 도움을 요청한 후 실질적 협력이 가시화되는 모양새다. 국내 조선업계가 미 통상정책 및 협상을 책임지는 USTR 대표와 공식 면담을 가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HD현대(267250)는 이날 오전 정기선 HD현대 수석부회장이 그리어 대표와 만나 한미 간 조선산업 협력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고 밝혔다. 그리어 대표를 비롯한 USTR 대표단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통상장관 회의 참석을 위해 14일 방한했다. 그리어 대표는 트럼프 대통령 1기 행정부 시절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USTR 대표의 비서실장을 역임하며 미중 간 공정무역을 위한 협상을 주도한 바 있다.
정 부회장은 이번 면담에서 “HD현대는 미국의 조선산업 재건 의지와 노력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며 “이를 위한 모든 준비를 갖춘 만큼 필요한 역할이 있다면 기꺼이 참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 부회장은 양국 간 조선산업 협력 확대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HD현대중공업과 미국 최대 방산 조선사인 헌팅턴잉걸스 간 협력 사례를 소개했다.
HD현대중공업은 최근 헌팅턴잉걸스와 업무협약을 맺고 미 함정 사업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헌팅턴잉걸스는 미 미시시피주와 버지니아주 지역에 조선소를 가지고 있다. 핵잠수함, 핵항공모함, 이지스 구축함 등 건조 능력을 지녔다.
정 부회장은 그리어 대표에게 공동 기술 개발, 선박 건조 협력, 기술 인력 양성 등 구체적인 협력 방안을 제시했다. 아울러 미국 내 중국산 항만 크레인의 독점적 공급 문제와 관련, HD현대의 계열사인 HD현대삼호의 크레인 제조 역량을 소개하며 공급망 확대를 위한 미국과의 협력 강화를 제안했다.
김희철 한화(000880)오션 대표는 이날 오후 그리어 USTR 대표를 만났다. 김 대표는 “기술 이전과 생산 기반 구축을 넘어 미국 조선산업의 재도약을 함께 실현해 나가는 전략적 파트너가 되고자 한다”며 “검증된 기술과 스마트 생산 체계를 기반으로 미국 현지에서도 실질적인 협력 성과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밝혔다.
김 대표는 미국 내 조선 생산 기반 확대와 기술 이전 방향을 중심으로 공급망 안정과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한화오션의 전략을 설명했다. 한화오션은 지난해 12월 국내 조선업 최초로 인수한 미 조선소인 필라델피아주 필리조선소에 거제사업장의 스마트 생산 시스템을 적용할 예정이다. 현지에서도 높은 수준의 선박 건조 기술과 생산성을 구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아울러 김 대표는 “다양한 수요와 장기적인 생산 역량 확보를 고려해 미국 내 추가적인 생산 거점 설립도 검토 중”이라고 했다.
한화오션은 이미 세 곳의 미 조선소에 관여하고 있다. 한화그룹은 필리조선소를 인수한 뒤 호주 조선·방산 업체 오스탈의 지분을 9.9% 매수했는데, 오스탈은 미국 앨라배마주 모빌과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 조선소를 가지고 있다. 한화오션은 앞서 지난해 두 차례에 걸쳐 미 해군 함정 유지·보수·정비(MRO) 사업을 수주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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