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전 리그 최고의 슈터 유망주로 선수 생활 첫 우승을 차지할 때도, 9년 전 코치로 고양 오리온스의 우승을 이끌 때도 조상현(49)은 덤덤했다. 그저 우승의 순간을 즐길 뿐이었다.
하지만 감독으로 팀이라는 무거운 짐을 어깨에 짊어지고 나선 이번엔 달랐다. 우승을 확정지은 순간 그의 눈시울은 붉게 물들었다. 그리고 이내 고생한 선수들과 끌어안고 눈물을 흘렸다. 돌부처 같았던 지난날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조상현 감독이 이끄는 창원 LG는 지난 18일 끝난 2024~2025시즌 프로농구(KBL) 챔피언 결정전에서 7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서울 SK를 시리즈 전적 4대3으로 물리치고 왕좌에 올랐다. 1997년 창단한 후 28년간 이어졌던 ‘무관의 한’을 끊어내는 순간이었다. 조 감독은 최근 서울경제신문과 전화 인터뷰에서 우승 순간을 떠올리며 “주축 선수들의 부상 등으로 팀 전체가 슬럼프에 빠진 적도 있을 만큼 힘든 시즌이었다. 우승하는 순간 힘들었던 과거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 눈물이 덜컥 나왔다”고 회상했다.
조 감독은 KBL 역대 세 번째로 선수·코치·감독으로 모두 우승을 거둔 진기록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는 SK에서 신인 시절이던 1999~2000시즌, 고양 오리온스 코치였던 2015~2016시즌, 이번엔 LG의 감독으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조 감독은 “신인 시절에 우승을 거둘 때는 멋모르고 좋았던 것 같고, 코치 시절엔 역할을 다했다는 생각을 했을 뿐 큰 감흥은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리더로서 팀을 만들어가면서 우승을 거둬 크나큰 영광이고 말로 다 할 수 없는 기쁨을 느꼈다”고 말했다.
조 감독은 2022년 LG의 사령탑을 맡을 때까지만 해도 팀은 만년 하위권 팀이었다. 하지만 조 감독은 부임과 함께 팀을 플레이오프(PO) 단골팀으로 변모시켰다. 그 바탕에는 조 감독이 강조한 ‘존중’의 원칙이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조 감독은 “운동 시간에 열정적으로 운동을 하고, 감독이 가고자 하는 방향을 잘 따라주면 그 외 시간은 선수들이 자유롭게 생활하도록 하는 것이 팀 구성원 간의 ‘존중’이라고 생각한다. 존중이 갖춰지며 서로 신뢰가 쌓였고 이렇게 결과로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조 감독은 ‘베테랑’으로 시즌 내내 팀을 이끈 챔프전 최우수선수(MVP) 허일영에 고마움을 전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는 “팀이 연패에 빠지며 9위까지 추락했던 때 일영이가 찾아와 ‘팀은 걱정하지 말라’며 나를 격려하더라. 일영이의 존재 덕분에 팀이 무너지지 않고 우승까지 거둘 수 있었던 것 같다. 참으로 고마운 선수”라고 말했다. 이번 우승으로 LG가 소위 ‘왕조’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는 평가에 대해서는 “힘든 일”이라며 선을 그었다. 그는 “이제 첫 우승을 달성했을 뿐이다. 스포츠에서는 항상 여러 변수가 발생하고 그것을 예측할 수 없다. ‘왕조’를 단언하기 보다는 항상 대권 도전이 가능한 팀으로 유지시키는 게 목표”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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