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대선이 일주일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각 후보들이 구체적인 소요 재원과 조달 방법을 모두 제시하지 못한 것과 관련해 공약의 실현을 불투명하게 만들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인공지능(AI) 100조 원 투자, 5대 메가시티 조성 등 대규모 예산이 투입되는 정책을 앞다퉈 쏟아내지만 재원이 확보되지 않는 이상 공허한 구호에 그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나라살림 적자가 연 100조 원에 육박하는 상황에서 경제위기 속 세수 기반 확충도 어려울 수밖에 없어 또다시 나랏빚에 대거 의존할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린다.
25일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가 각 정당 대선 후보들로부터 받은 답변서에 따르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는 대규모 재원이 투입될 것으로 예상되는 사업들을 정책 우선순위로 제시했다. 이 후보는 1순위 과제로 AI 민간 투자 100조 원 시대를 꼽았고, 5대 초광역권별 광역급행철도 건설, 지역화폐(지역사랑상품권) 발행 확대 등이 그 뒤를 이었다. 김 후보도 AI 시대 전력 인프라 확충, 5대 광역권을 메가시티로 육성, 임기 내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A·B·C 노선 개통 및 D·E·F 노선 착공 등을 앞쪽에 배치했다.
이들 정책은 모두 근본적인 사회·경제 시스템의 개혁을 요구하는 것들로 막대한 예산 소요가 불가피하다.
하지만 민주당은 각 과제들의 재원 조달 방안에 대해 ‘정부 재정지출 구조조정분, 2025~2030 연간 총수입증가분(전망) 등으로 충당’이라는 한 줄 설명을 반복했다. 국민의힘도 ‘경기 회복을 전제로 한 세입 증대 예상분 활용’ ‘지출효율화(재량지출 감축, 성과를 반영한 조정 등)’ 등을 재원 해법으로 내놓았다.
두 후보는 공약 이행을 위해 각각 210조 원, 150조 원가량이 필요할 것으로 봤지만 10대 핵심 공약별 소요예산조차 제시하지 못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는 국정 공약과 지역 공약에 필요한 재정 추계 자체를 내놓지 않았다. 공약을 수정 중이어서 특정할 수 없다는 이유를 달았다. 10대 공약별 소요 재원을 추계하지 못한 것은 이번 대선이 처음이라는 게 매니페스토실천본부의 설명이다. 그만큼 날림 공약으로 전락할 개연성이 크다는 의미다.
앞서 20대 대선 때는 이재명 후보가 공약 이행에 5년간 300조 원 이상을, 윤석열 후보가 266조 원을 제시한 것과 비교하면 이번 대선 공약 재원은 각 당별로 줄어들었다. 하지만 이전 대선 당시에는 코로나 피해 지원 비용에 상당한 금액을 배치했다는 점에서 일률적인 비교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각 후보들이 전체 지출 총액으로 제시한 금액조차 신뢰하기 어렵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이미 AI 분야에 한정해 봐도 이 후보는 민간 투자 100조 원 시대 개막을, 김 후보는 민관합동 펀드 100조 원 조성을 약속했다. 이 후보의 만 18세 아동수당 확대 공약은 매월 10만 원을 기준으로 2026~2030년 5년간 35조 5000억 원이 들어간다는 게 국회예산정책처의 분석이다. 이런 가운데 소상공인·자영업자 육아휴직수당 확대 등의 지출 규모도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 후보 역시 0~17세 ‘우리 아이 첫 걸음계좌’ 신설, 소득 하위 50% 노인의 기초연금을 40만 원으로 인상 등 각종 지원책을 이행하려면 150조 원으로는 부족할 것으로 보인다. 오문성 한양여대 세무회계학과 교수는 “탄핵으로 급하게 치러지는 선거에서 후보들이 구체적 비용 추계를 언급하기는 어렵다”면서도 “어떤 공약의 지출이 많다고 하면 공격을 받는데 굳이 구체적으로 밝히겠냐”고 반문했다.
결국 상당수 공약이 공허한 구호로 끝나거나 적자국채 발행 등에 의존할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18일 경제를 주제로 한 1차 TV 토론에서도 이 후보와 김 후보는 모두 일정 정도의 국가부채 증가를 감당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 후보는 김 후보에게 “코로나 과정에서 다른 나라들 전부 국가부채를 늘려가며 국민을 지원했다”며 “국가부채를 감수하고라도 소상공인·서민의 코로나 극복 비용을 정부가 부담했어야 한다. 안 했으니 지금이라도 떠안는 것이 어떠냐”고 했다. 이에 김 후보 역시 “정부에서 다양한 대책을 세우는데 국가부채가 일정 부분 늘어날 수밖에 없으며 감수해야 한다”고 동의했다.
하지만 나라살림 적자가 연 100조 원에 육박하고 국가채무가 매년 4%씩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는 상황에서 후보들의 재정에 대한 문제의식이 안이하다는 지적이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공약의 재원 조달이 안 되면 새 정부 중반에 가서는 국가부채가 중요 화두가 될 것”이라며 “증세 등 구체적인 세입 확충 계획 등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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