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모순의 나라
“그건 모순이야!”
카페의 통유리 위로 가랑비가 빗금을 긋는 풍경에 몰두하다가, 나는 소스라쳤다. 누나가 선명한 한국말을 내뱉어서만은 아니었다. 대화를 시작할 때부터 유창한 영어와 미국식 제스츄어로 사람들의 눈길을 끌던 누나는 내 눈동자의 초점이 자기에게로 모이자 다시 되풀이했다.
“그건 모순이야.”
여태 영어로 대화를 이어가다가 하필 이 단어를 한국어로 뱉었다. 아버지의 발인 날에 한국에 도착한 누나는 내가 본가에 1주일 머무는 동안에도 계속 외출이 잦아서 이야기할 기회가 없었다. 더구나 지극히 따르던 여동생이 아버지의 죽음 이후로 싸늘하게 변해버려 내상을 입었던 터라 누나도 그러려니 했다. 따로 카페에서 만나자고 제안한 쪽이 누나였다. 누나는 결혼해서 미국으로 떠날 때 유산을 미리 받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아무것도 남기지 않을 줄은 몰랐다고 섭섭함을 드러내다가, 슬그머니 나에게 남겨진 비밀스러운 유산을 떠보았다. 내가 책 한 권을 받았을 뿐이라고 했을 때, 누나는 이번에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건 모순이야.”
누나는 자신의 유산에의 불평을 나에게로 돌려 말하기 시작했다. 창끝이 나를 겨냥하듯 날이 선 누나의 눈이 나를 보았다.
“아들 하나뿐인데, 어찌 유산이 책 한 권이야?”
이 질문의 대답은 나도 알지 못한다. 나는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조촐한 유산을 나는 심리적으로 수용한 상태인데, 언론을 통해 이 사실을 알게 된 친지나 친구들은 여러 의미에서 더 난리였다. 그래서 누나가 이어서 던질 질문도 뻔했다. “책의 안을 샅샅이 찾아봤어?”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했듯 똑같이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다른 사람들이 그랬듯이 나는 누나가 던질 또다른 질문도 이미 알고 있다.
“뭔가 있을 거야.”
친척들은 백지 수표나 보물섬 지도가 들어 있을 거라고 농담으로 위로했고, 어떤 이는 아버지의 ‘치매기’를 언급하며 위로했고, 어떤 이는 사랑받지 못한 아들을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으로 위로했다. 누나는 ‘뭔가’가 있을 거라는 정도의 차이였다. 하지만 나는 여느 때와 다른 심정을 느꼈다. 우선 누나가 내뱉은 ‘모순’이라는 단어 때문에 호흡이 가빠졌다. 나의 현재의 추락은 세계적인 작가와의 대담에서 맞닥뜨린 모순적인 한 문장 때문이었다. 책의 안을 샅샅이 뒤져보라고 다들 권했지만, 아버지는 성경 안에 세상의 물질을 숨길 분은 아니었다. 내가 만일 일말의 그런 의도로 성경을 뒤졌다면 스스로 상처를 더 크게 입었을 것이다. 그런데 누나의 말을 듣자, 아버지는 나에게 ‘뭔가’ 좋은 것을 주려고 했다고 느껴졌다. 나의 침묵에 더 대응할 수 없을 때, 사람들이 던지는 마지막 질문이 이것이었다.
“그 책 제목이 뭔데?”
책을 유산으로 받았다고 하면, 제일 먼저 책 제목을 물을 줄 알았다. 신기하게도 사람들은 항상 마지막에, 더 물어볼 말이 없을 때, 비로소 이 질문을 던졌다. 나는 미국인 남편을 둔 누나에게 영어로 대답했다.
“Bible!”
기세등등했던 누나가 그 책 제목을 듣자 갑자기 차분해졌다. 몸을 의자 뒤쪽으로 편안하게 뉘었다. 입을 쉴 줄 모르는 누나가 침묵하니 분위기가 일순간에 바뀌었다. 이번에는 내가 물었다.
“누나! 유산으로 책 한 권 받은 것이 왜 모순이야?”
나는 진심으로 궁금했다. 누나는 정색했다.
“내가 언제 모순이라고 그랬어? 얘 좀 봐. 말귀를 못 알아듣는구나.”
그 책이 성경임을 알게 된 누나는 모순이라는 표현을 당장 거두어들였다. 나는 이 모순적인 상황이 이해되지 않아서 다시 물었다.
“누나. 내가 제일 싫어하는 표현이 뭔지 알지? 말귀를 잘 못 알아듣는다는 표현이야.”
외교관인 아버지의 첫 발령지인 튀니지에서부터 나는 말귀를 알아듣지 못한다는 표현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그 후 아버지를 따라 여러 나라를 떠돌며 그곳이 어디서든지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이 되곤 했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또래에게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는 말을 한국어로 들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표현이었다. 이것은 아마 한 살 터울인 누나도 마찬가지였겠지만, 누나는 그런 설움의 반작용으로 아예 외국인과 결혼했고, 나는 가는 나라마다 언어를 적극적으로 배워서 언어 능력자가 되었다. 누나는 다시 발뺌했다.
“내가 언제 모순이라고 그랬어.”
나는 여러 나라를 돌며 여러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접하며 자랐다. 나의 혼란을 줄여주기 위해, 아버지가 ‘창과 방패’의 고사를 들려주셨다.
중국 초나라에 창과 방패를 파는 상인이 있었는데, 그는 사람들에게 “이 창은 워낙 날카로워서 뚫지 못하는 것이 없다”고 외쳤고, 또한 그는 “이 방패는 워낙 단단해서 어떤 것도 뚫을 수 없다”고 외치며 호객 행위를 했다. 그러자 한 사람이 당신의 창과 방패가 같이 싸우면 어떻게 되느냐는 질문을 던졌고, 상인은 대답하지 못했다. 이처럼 서로 어긋나서 맞지 않는 것에서 ‘모순’이 생겼다고 했다.
나는 상인이 두 가지를 한꺼번에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고, 서로 다른 상인이 다른 곳에서 말했다면 문제 될 것이 없었다고 아버지에게 어필했다. 당시 어린 나의 표정을 보며 아버지가 웃으셨던가. 그 후 나는 창의 나라에도 살고 방패의 나라에서도 살았다. 이 나라에서 옳았던 것이 저 나라에서는 옳지 않았다. 덕분에 나는 옳고 그른 기준이 남들보다 넓어졌고, 여러 상황에 관대한 정서를 지니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 누나의 변덕 아닌 변덕, 언어적 배반은 이해하기 힘든 것이다. 두 상인이 창과 방패를 각각 다른 장소가 아니라 같은 장소에서 팔았다면 결국 싸움이 붙었을 것이고, 결판이 났을 것이다. 싸움은 무기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다루는 자의 것이기 때문이다. 한쪽은 반드시 지게 되어 있다. 모순은 기다려보면 결판이 난다. 하지만 기다려도 누나는 속 시원한 대답없이 다른 사람들과 비슷한 마무리 말을 했다.
“아버지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분이다.”
나는 누나의 사유 변화 과정이 진심으로 궁금했다. 아버지가 외아들에게 책 한 권을 유산으로 남긴 것이 모순이라고 했다가, 그 책이 성경이라고 했을 때 누나는 단번에 모순의 상태를 벗어났다. 더불어 자신의 유산에 대한 불만에도 입을 다물었다. 나는 이런 누나의 변화와 상황의 변화에 묘한 충격을 받았다. 나는 성경 한 구절 때문에 헤어나올 수 없는 현실적인 딜레마에 빠졌는데, 어떻게 성경 때문에 단번에 모순에서 벗어났는지 누나의 머릿속으로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누나답지 않은 침묵이 이어졌다.
<너희는 값으로 사진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순간 그 모순적인 문장이 되살아났다. 내가 앞으로도 뒤로도 갈 수 없게 만든 진퇴양난의 문장이다. 나를 가장 수치스럽게 만든 문장이다. 누나의 침묵 속에 이 문장이 창처럼 다시 나에게 날을 세운다. 나는 아버지의 유품을 감히 펼치지 못했다. 나는 어떤 책도 거침없이 독파했지만, 이 책만은 자신이 없다. 이미 실패했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피폐한 상황에서 성경을 읽게 되면 더 이해할 수 없는 미로에 빠질 것이고, 철저하게 무너져내릴 것이다. 사람들이 진리라고 믿는 길이 나에게는 열리지 않았다. 앞으로도 그럴 것같은 예감으로 두려웠다. 뻔히 무너져내릴 것을 알면서 시작할 수는 없었다. 아예 책장을 들추어 보기조차 싫었다. 그런데 누나의 심리적 전이가 어떻게 가능한지 알아내고 싶었다. 나는 살아오면서 사치스럽고 욕심이 많은 누나를 처음으로 다른 눈으로 바라보았다.
▶ 다음 회에 계속 …
김다은은 ‘당신을 닮은 나라’가 1995년 제3회 국민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소설가로 등단했다. ‘덕중의 정원’ ‘훈민정음의 비밀’ ‘쥐식인 블루스’ 등 20여권 소설책을 출간하고, 다수 번역돼 해외 소개됐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관한 폴란드 바르샤바대학 작가 레지던시를 비롯, 청송 객주 문학관, 정선 여량면 아우라지 레지던시, 해남 인송문학촌 토문재 레시던시에 참가했다. 이화여대 불어교육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8대학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추계예술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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