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소주는 필리핀 증류주에 비해 훨씬 부드럽고 깔끔합니다. 필리핀 2030세대가 즐겨보는 한국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소주에 대한 관심도 커지는 것 같아요.” 필리핀 마닐라의 한 대형마트에서 만난 20대 사이린 씨는 이렇게 말했다.
필리핀에서 소주는 더 이상 낯선 술이 아니었다. 대형마트 주류 코너 중심에 자리 잡고 있을 뿐 아니라 한국 음식점이 아닌 현지 술집에의 메뉴판에도 올라가 있었다. 과일맛 소주, 소맥(소주+맥주) 등 현지화 전략이 통하면서 소주는 현지 젊은 층을 중심으로 인기를 끌고 있었다.
숫자로 봐도 소주의 글로벌 영향력은 확실히 커졌다. 소주 수출액은 2021년 8242만 달러, 2022년 9333만 달러, 2023년 1억 141만 달러, 2024년에는 1억 451만 달러로 4년 연속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성과에 취해 여기에서 만족해서는 안 된다. 저출산·고령화·소비위축 등으로 국내 주류 시장이 정체 국면에 접어든 만큼 국내 주류 기업들은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 시장에서 소주의 입지를 넓혀 생존을 모색해야 한다.
특히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으로 소주의 영향력을 본격적으로 확장해야 할 시점이다. 단순히 교민들의 수요에 기대하기보다는 현지 소비자층까지 주도적으로 끌어들이는 전략적 확대가 필요하다. 선진국 시장은 상대적으로 물가와 주류 가격 수준이 높은 만큼 단가를 높여 기업 실적을 개선할 수 있는 열쇠가 될 수 있다.
과제도 분명하다. 한류의 영향력으로 소주 수요가 빠르게 증가한 아시아 지역과 달리 선진국 시장에서는 ‘한국산’ 이상의 실질적 경쟁력이 필요하다. 와인·맥주·위스키 등 글로벌 주류 강자들과의 정면 승부를 피할 수 없다. 이제는 단순한 문화 콘텐츠의 혜택을 넘어 제품 품질, 지속적인 연구개발(R&D), 현지 유통 채널 확보까지 포함한 종합 전략이 필요하다.
일본의 사케가 그러했듯 소주 역시 ‘세계인의 술’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을 충분히 갖고 있다. 상대적으로 도수가 낮고 부드럽게 넘어가는 특성은 ‘가볍게 즐기는 술’을 선호하는 글로벌 트렌드와도 맞닿아 있다. 에펠탑이 보이는 프랑스 파리의 식당에서 와인 대신 소주를 주문하는 그날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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