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국내 자산운용사들의 투자대상회사에 대한 의결권 행사 현황을 점검한 결과 상당수의 운용사들이 의결권을 불성실하게 행사하거나 행사·불행사 사유를 미흡하게 기재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업계 상위 운용사들 중에서도 의결권 행사·불행사 사유 중복기재율이 80%가 넘는 곳들이 있어 수탁자 책임 의무의 충실한 이행을 위한 노력이 촉구된다.
금감원은 국내 자산운용사 273개 사가 지난해 4월부터 올 3월 말까지 한국거래소에 공시한 공·사모펀드 의결권행사 현황(총 2만 8969개 안건)을 점검한 결과, 전체 안건에 대한 의결권 행사율이 91.6%, 반대율은 6.8%로 집계됐다고 4일 발표했다. 이는 2023사업연도(행사율 79.6%, 반대율 5.2%)보다는 개선된 수치이나 주요 연기금과 비교하면 여전히 미흡하다. 지난해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의 의결권 행사율은 각각 99.6%, 97.8%에 달했다.
자산운용사는 투자자가 투자 판단에 참고할 수 있도록 의결권 행사·불행사 사유를 구체적으로 기재해야 하나 점검 대상의 26.7%(72개 사)가 안건 절반 이상에 대해 ‘주주총회 영향 미미’, ‘주주권 침해 없음’ 등 사유를 형식적으로 적었다. 보유 중인 모든 종목의 모든 안건에 대해 의결권을 불행사하며 그 이유를 ‘펀드 손익에 중대한 영향 없음’ 등으로 일괄 기재한 자산운용사도 있었다.
또 자산운용사는 투자자가 의결권 행사 여부의 적정성을 판단할 수 있도록 의결권 행사의 근거가 되는 내부 지침을 공시해야하나, 20.9%(57개 사)는 법규 나열 수준의 기본 정책만을 공시하고 안건별 행사 근거가 규정된 세부지침은 공시하지 않았다. 의결권 행사 내역 공시과정에서 의안명을 구체적으로 기재하지 않거나(31.5%), 대상 법인과의 관계를 미기재(54.6%) 하는 등 공시 서식을 미준수한 사례도 다수 발견됐다.
특히 지난해 말 기준 상장주식 보유 상위 5개사에 속하는 한국투자신탁운용, KB자산운용도 의결권 사유로 ‘주주권 침해 없음’ 같은 문구를 여러 안건에 중복 기재한 비율이 각각 86.2%, 80.2%로 나타나 개선이 필요하다는 금감원 지적을 받았다. NH아문디자산운용의 의결권 행사·불행사 사유 중복기재율도 60.9%였다.
반면 미래에셋자산운용, 교보악사자산운용, 트러스톤자산운용, 신영자산운용 등 4곳은 의결권 행사 실태가 다른 자산운용사보다 양호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펀드내 다양한 종목을 보유하면서도 의결권 행사율(99.3%)과 반대율(16%)이 주요 연기금과 유사했고, 의결권 행사 사유도 구체적으로 기술했다. 교보악사자산운용은 중소형사임에도 전담 조직 운영을 통해 의결권 행사 사유를 내부지침상 근거를 기반으로 명확하게 작성했고 의결권 행사율(97.4%)과 반대율(16.1%)도 주요 연기금 수준이었다.
트러스톤·신영자산운용의 경우 투자대상회사 경영진과의 면담, 주주제안 등 주주권 행사 프로세스를 적극적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의결권 행사율(각각 100%, 98.8%) 또한 높은 수준으로 나타났다.
금감원은 앞으로 기관투자자 수탁자 책임 의무의 충실한 이행을 위해 자산운용사 의결권 공시 점검을 다각도로 실시하고 투자자가 성실한 수탁자를 가려낼 수 있도록 펀드 의결권 행사 비교·공시시스템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이다. 스튜어드십 코드 운영도 개선한다는 방침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의결권 행사·불행사 사유 기재와 관련 업무체계에 개선 필요사항이 다수 발견됐다”며 “수탁자 책임 활동이 제고되기 위해서는 조직·인력·성과관리 등 경영진의 관심과 지원이 필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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