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당국이 지금의 가계부채 총량 관리 기조를 새 정부에서도 이어간다고 밝혔다. 가계부채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한다는 뜻이지만 올해 성장률이 급락할 것으로 예측되는 상황에서 과도한 총량 관리는 자영업자와 가계의 부담을 키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5일 금융계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4일 은행 여신 실무 담당자들과 가계대출 관련 동향 점검 회의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금융위는 “기존대로 자율적으로 총량을 관리하면 된다”는 취지의 언급을 했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금융 당국이 가계대출 회의를 연 것은 처음이다.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열린 비상경제점검 태스크포스(TF) 회의에서도 가계부채와 관련해서는 특별한 언급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 당국의 한 관계자는 “은행들이 총량 목표 내에서 가계대출을 자율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기조에는 변화가 없다”고 강조했다.
현재 금융 당국은 월·분기별로 은행별 가계대출 총량을 모니터링하고 있다. 이를 토대로 각 은행들이 자율적으로 대출 공급을 조절하도록 유도함으로써 특정 시기에 가계대출이 쏠리지 않게 하겠다는 취지다. 금융위는 가계부채 증가율을 실질 경제성장률과 물가 상승률을 더한 경상성장률 이내로 유지한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금융계에서는 이재명 정부에서도 이 같은 가계대출 총량제 기조가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가계부채 총량의 안정적 관리 기조 확립’을 제시한 바 있다. 당시 이 대통령이 구체적인 방법론을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전 정부의 가계부채 관리 기조와는 크게 차이가 없다는 해석이 우세했다. 금융계의 한 관계자는 “사실 대선 때 더불어민주당 공약을 보면 금융 당국의 기존 가계부채 관리 기조와 부합한다고도 볼 수 있었다”고 짚었다.
당국 입장에서는 최근의 금리 하락세로 가계부채 증가 압력이 높은 만큼 긴장의 끈을 놓치기는 쉽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예금은행의 대출금리(신규취급액 기준)는 지난해 12월 연 4.72%에서 올 4월 4.36%로 0.36%포인트 떨어졌다. 5월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가계대출 잔액은 전월보다 4조 9964억 원 늘어난 약 748조 원으로 집계됐다. 금융계에서는 지난달 전체 금융권의 가계대출 증가액이 6조 원에 달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있다.
시장에서는 진보 정부에서 부동산 가격이 치솟았다는 기대감에 집값이 들썩이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가계대출 총량을 어느 정도 유지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제기된다. 부동산 가격 폭등이 정권 교체의 주요 원인이 됐던 만큼 대출 공급을 조절해 부동산 가격이 급격하게 뛰는 일은 막을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일각에서는 새 정부 경제팀이 실제로 꾸려져야 구체적인 가계부채 관리 기조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금융위원장과 금융위 부위원장, 그리고 금융감독원장 인사가 나야 구체적인 가계대출 대응 방향이 잡힐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이르면 다음 달 나올 새 정부의 성장률 전망치에 따라 가계대출 총량 관리 목표 수치는 바뀔 수 있다. 한국은행은 올해 한국 성장률 전망치를 0.8%로 하향 조정했다. 경기 침체에 물가도 안정세로 접어들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총량제를 기계적으로 적용할 경우 서민 경기가 더 얼어붙을 수 있다. 금융계의 한 관계자는 “지난달 가계부채 증가액이 6조 원을 웃돌고 서울 주요 지역 집값이 상승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당분간은 가계부채를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서민과 소상공인에 대한 대출 탕감과 채무조정이 대대적으로 이뤄질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어느 정도 수준의 대출 조이기는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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