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졸중의 골든타임을 획기적으로 늘려줄 신약이 나왔지만 국내 허가가 9개월째 지연되면서 의료현장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의정 갈등으로 인한 진료 공백이 심화하며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가 계속되는 만큼, 뇌졸중 후유증을 최소화할 수 있는 신약의 도입이 더욱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15일 의료계에 따르면 미국·유럽 등 주요 국가에서 뇌경색 환자의 초급성기 치료법으로 처방되는 '테넥테플라제(제품명 메탈라제)'가 국내에선 쓰이지 못하고 있다. 국내 공급을 담당하는 한국베링거인겔하임이 작년 9월 품목허가를 신청했지만 9개월 넘게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가 나질 않아 사용 가능한 시점은 미지수다. 식약처의 잇단 추가 자료 요청 등으로 심사 일정이 지체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 관계자는 "급성 허혈성 뇌졸중 환자에서 테넥테플라제 사용은 국제 가이드라인의 권장사항으로 제시돼왔고 유럽·미국·중국·호주 등 다수 국가에서 허가됐지만 국내에선 아직 허가 전"이라고 말했다.
전체 뇌졸중의 약 80%를 차지하는 뇌경색(허혈성 뇌졸중)은 증상 발생 4시간 30분 이내에 정맥 내 혈전용해제를 투여해야 한다. 뇌경색 발병 후 1시간 30분 내에 혈전용해제를 투여할 경우 치료받지 않은 환자보다 장애가 남지 않을 가능성이 3배가량 높다. 반대로 3시간을 넘기면 그 가능성이 절반 이하로 떨어진다.
현재 국내에서 뇌경색에 쓸 수 있는 혈전용해제는 ‘알테플라제(제품명 액티라제)’가 유일하다. 이 약은 반감기가 4~6분 정도로 짧아 투약 과정에서 애로사항이 많았다. 약물의 10%를 정맥으로 일시 주입한 다음 나머지 90%를 1시간에 걸쳐 서서히 투여해야 하는데, 애매한 시간에 방문한 경우 뇌경색 진단에 필요한 각종 검사를 시행하느라 골든타임을 놓칠 위험이 컸다.
테넥테플라제는 기존 알테플라제를 개량한 유전자재조합 혈전용해제다. 반감기가 20분 이상으로 늘어나 5~10초 만에 정맥 내 일시 주입이 가능하고 혈전용해 효과가 강력한 데다 출혈 부작용은 상대적으로 낮아 급성기 뇌경색의 이상적인 치료제로 평가된다. 미국에선 심근경색 환자 대상으로 2000년 미국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았고 올 3월 뇌경색을 추가 적응증으로 확보했다. 미국에서 뇌졸중 신약이 허가를 받은 건 30년 만이다. 미국·유럽·중국·호주 등에서도 이미 급성 뇌경색 환자에 대한 사용 승인을 받고 정맥 내 혈전용해술에 활용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2003년 심근경색 치료용도로 식약처 허가를 받아 20년 넘게 쓰였다.
식약처는 신약 허가 인력을 늘리고 심사 기간을 단축하겠다며 올해부터 기존 883만 원이던 신약 허가 수수료를 4억1000만 원으로 대폭 인상했다. 식약처 관계자는 테넥테플라제의 허가 지연 사유를 묻는 취재진에 "의약품 품목허가 신청 여부, 검토 진행 상황 등에 대해서는 업체 정보에 해당하므로 공개가 어렵다. 의약품 품목허가 신청 시 관련 법령에 따라 안전성·유효성 등을 면밀히 검토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자료가 부족하거나 미비한 경우 신청인에게 추가(보완) 자료를 요청할 수 있다"며 원론적인 답변을 내놨다.
임상에선 테넥테플라제를 사용할 수 있게 되면 그동안 안타깝게 치료 골든타임을 놓쳤던 뇌경색 환자들에게 혜택이 돌아갈 것으로 기대한다. 대한뇌졸중학회 연례 보고서에 따르면 증상 발생 3시간 이내 병원을 방문하는 사람은 전체 뇌졸중 환자의 25~30%정도에 그쳤다. 병원 도착시간이 늦어져 정맥 내 혈전용해술을 받지 못한 환자들이 그만큼 많다는 의미다.
김태정 대한뇌졸중학회 홍보이사(서울대병원 신경과 교수)는 “테넥테플라제는 심근경색 환자에게 20년 넘게 사용됐다"며 “엄밀히 신약이라고 보기 어려운 데도 언제 사용 가능할지 알 수조차 없으니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어 "급성 뇌경색 환자 대상으로도 2010년부터 20여 개 임상연구를 통해 유효성과 안전성이 입증된 만큼, 국내 뇌경색 환자들의 예후 호전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신약의 신속한 허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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