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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삼근왕 추정 어금니 출토"…공주 왕릉원 2호 고분 주인 찾았다

■ 국가유산청·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 조사

웅진 천도 시기 부장품 등 찾아

옥 달린 금 귀걸이·은도금 칼집

5세기말 '황금 공예기술' 주목

무령왕릉 발굴 현장음성도 공개

17일 서울 중구 한국의 집에서 열린 ‘공주 왕릉원 1~4호분 조사 성과’ 언론공개회에서 출토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연합뉴스




고구려의 공격에 백제는 개로왕을 잃고 수도 한성(지금의 서울)까지 함락되는데 개로왕의 아들 문주왕은 475년 웅진(공주)으로 수도를 옮긴다. 패전 후 국내 정치도 혼란 상태에 빠지면서 문주왕은 재위 2년(475~477)만에 사망하고 아들인 삼근왕 역시 재위 2년(477~479)만에 죽임을 당한다. 개로왕의 손자인 동성왕(재위 479~501) 시기 힘을 추스르고 이어 또 다른 손자인 무령왕(재위 501~523) 때에야 백제는 다시 ‘강국’이라 부를 정도로 회복한다.

이같은 사실은 앞서 1971년 공주 송산리 고분군(현재 명칭은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에서 무령왕릉이 거의 원형 그대로 발굴되면서 분명해졌다. 하지만 백제가 거의 멸망 직전까지 갔던 문주왕과 삼근왕 때의 상황은 여전히 불투명했다. 삼국사기의 서술도 이 시대는 아주 간략하게 넘어갔다.

최근 국가유산청의 공주 왕릉원 발굴에서 백제 문주왕·삼근왕 때의 상황을 알게 해주는 중요한 유물이 나왔다.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국가 체제와 외부 교류망이 잘 작동했으며 중흥을 위한 기반이 유지됐던 시기라는 의미다. 국가유산청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는 17일 서울 중구 한국의집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2023년부터 공주 왕릉원의 1~4호 무덤을 재조사하던 중 2호 무덤에서 어금니 등 치아 2점과 적지 않은 부장품을 찾았다”고 밝혔다.

연구소는 특히 “2호 무덤의 주인은 백제의 제23대 왕인 삼근왕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삼근왕은 13세의 나이로 즉위해 15세에 숨을 거둔 ‘소년왕’이었다. 이들 무덤은 일제강점기 전후 수차례 도굴됐고 또 일제가 한 차례 조사를 진행해 새로운 유물이 없을 것으로 여겨졌다.

‘공주 왕릉원’ 2호분에서 출토된 금 귀걸이 모습. 중간에 옥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뉴스1


‘공주 왕릉원’ 2호분에서 출토된 삼근왕의 어금니로 추정되는 치아 모습. 뉴스1


2호 무덤의 주인을 밝힌 핵심 유물은 치아였다. 황인호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장은 “무덤 안에 남아있는 흙을 낱낱이 모아 다시 조사하는 과정에서 치아들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법의학 분석 결과 어금니의 주인은 10대 중후반의 인물로 파악됐다.

국가유산청 자문에 참여한 이우영 가톨릭대 해부학교실 교수는 “오른쪽 위턱에 있었던 치아들”이라며 “치아의 형태 등을 볼 때 20대가 되기 전 10대 중후반 연령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연구소 측은 왕위 계승과 가계도, 어금니의 연령대 등을 고려해 2호 무덤의 주인이 삼근왕일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이에 따르면 2호 무덤에 앞서 만들어진 1호 무덤의 주인은 부친인 문주왕이 된다. 다른 3~4호분은 각각 주요 왕족의 무덤이다.



연구소는 2호 무덤에서 나온 다양한 유물도 주목하고 있다. 무덤에서는 청색 유리 옥이 달린 정교한 금귀걸이, 은에 금을 도금해 줄무늬를 새긴 반지, 철에 은을 씌워 장식한 오각형 형태의 칼 손잡이 고리 장식 등 화려한 공예품이 나왔다. 이한상 대전대 역사문화학 전공 교수는 “웅진 도읍기 귀걸이 유물에서만 유리 구슬이 확인되는데 한성 백제 시기에 비해 한층 발전된 형태의 공예 기술”이라며 “이후 5세기 후반 무령왕대에 꽃을 피우는 백제의 뛰어난 황금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자료로 가치가 크다”고 말했다.

2호를 비롯해 각 무덤에서 여러 종류의 옥 1000여 점이 나온 점도 중요하게 평가된다. 김규호 공주대 문화재보존과학과 교수는 “이중 황색과 녹색 구슬에 사용된 납 성분은 무령왕릉과 동일하게 산지가 태국으로 분석됨에 따라 당시 동남아시아를 아우르는 광범위한 교역망이 운영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삼국사기는 무령왕 시기를 ‘갱위강국(更爲强國·다시 강국이 됐다)’고 표현하고 있다.

‘공주 왕릉원’ 전경. 위쪽에 이번에 발굴된 1~4호분이 있다. 사진 제공=국가유산청


1971년 무령왕릉 발굴 현장을 녹음한 음성도 이날 공개됐다. 카세트테이프에 녹음된 이 음성은 공주시에 사는 이모 씨가 이사한 집에서 발견해 보관하다가 올해 1월 국가유산청에 기증한 것이다. 당시 고분군의 5호분과 6호분 배수로 공사를 하다 무령왕릉을 발굴했다. 무령왕릉은 현재까지 주인이 확인된 유일한 백제 왕릉이기도 하다. 국가유산청은 “해당 녹음물을 국가유산청 기록관 ‘담아이음’에서 보관 중”이라며 “누구나 들을 수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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